brunch

매거진 구도의 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윤규 Oct 17. 2022

너의 시선의 끝에

동경과 질투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눈 앞에 마주 앉아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난 너의 눈에 시선을 이었지만, 너의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동경이란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담아내지 못했다. 동경과 비스무리한 감정은 느꼈겠지만 질투에 더 가까운 마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동경은 ‘어떤 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이나 충동’이며 질투는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


사실 질투와 동경은 평행선을 이루는 감정이 아니다. 질투하기에 동경하고, 동경하기에 질투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시는 그를 동경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동경의 최종 형태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본다. 당신의 시선은 그의 눈으로 향했지만, 그의 시선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시선을 이어보니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점이 찍혔다.


다른 사람, 다른 친구, 다른 사물, 다른 풍경.


동경하는 이의 끝이 내가 아님을 인지한 순간, 당신은 그 시선의 끝을 질투한다.


그가 그 사물에서 멀어져 불행하다면 내가 행복해지며,


그가 그 사물에 가까워져 행복하다면 난 불행해진다.


‘동경하는 자의 행복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고, 동경하는 이의 불행이 나를 기쁘게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던졌을 때 행복함을 느끼다니.


이렇듯 인간에게 사랑, 동경, 질투, 열등감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감정이다. 그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나타나는 일련의 감정의 정도 차이일 뿐이다.




평소 질투의 감정을 많이 느껴봤을 것이다. 이성적인 사랑의 대상뿐 아니라, 아직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한 동경의 대상에게도, 우정이라는 특이한 사랑의 대상에게도.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웃고 있다면 우린 그를 질투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면 우린 그를 질투할 것이다.


당신의 우정의 대상이 다른 이와 더 큰 우정을 쌓고 있다면 우린 그를 질투할 것이다.


이미 떠나간 사랑이지만, 그가 또 다른 사랑을 만들고 있다면 우린 그를 질투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닿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를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미움을 던지는 동시에 시선 끝에 사물을 ‘관찰’한다.


그를 동경하고 그와 동시에 경멸한다.


무엇이 그의 시선을 이끌어냈을까. 과연 무엇이 내가 미움을 던지게 만들었을까. 나에게서 찾아내지 못한 어떤 모습을 그는 찾아낸 것일까.




그 감정 속의 길의 끝은 매우 단순하다. 딱 2가지 결말.


그의 시선을 다시 나에게로 되돌리거나, 그의 시선이 되돌아오기 전에 내 시선의 끝을 옮기거나.


하지만 이따금씩 한번도 보지 못한 샛길이 나오곤 한다. 그의 시선 끝에 ’나의‘ 시선을 옮기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앗아간 그를 동경하는 것.

질투의 원인, 미움을 던지게 한 원인을 닮아가는 것.




너무 소심하고 여린 나다.


그의 시선을 다시 되돌리기엔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다. 난 그보다 잘난 것이 없다. 자존감만 바닥으로 향할 뿐이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내 시선을 옮겨 그를 떠나보내기엔 내가 너무 여리다. 더 이상 내 시선에 그가 없는 나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난 결국 그 샛길로 떠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내 감정을 던져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온갖 관심으로 내 안에 넣어보려 온갖 발악을 해보지만


그저 난 나를 잃어갈 뿐이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도 아니고, 내가 이런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 시선을 돌릴 수도 없다. 난 그저 그가 좋아하는 것을 흉내 낸 모조품일 뿐이니까.


어찌 내가 미움을 던진 것에 다시 애정을 건네어 품을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두려움의 대안책이라 생각했던 이 길은 그저 나를 좀먹는 길일뿐이다. 난 더 깊은 지하로 떨어져만 간다.




이렇듯 질투라는 감정이 담긴 이야기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그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워 가면을 씌운 동화에 불과하다.


그 진정한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다면,


본인 스스로를 잃고 싶지 않다면,


단호히, 그 누구보다 강렬히 나의 시선의 끝을 그가 아닌 더 먼 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바로 앞 얕은 거리의 누군가가 아닌


더 넓고, 멀고, 깊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가.

매거진의 이전글 두 개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