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매우 인접한 도시 아파트에 사는 내가 동네 지인에게 이사 준비 중이라고 말을 건넸다. 아이 학교 때문에 이제 이사 가시는 거죠? 하고 묻는다. 그럼 어디로 가세요? 후속 질문을 염두에 두고 대답을 준비하려는 참이었는데 먼저 말을 잇는다. "여기서 가까운 목동이나 강남 쪽으로 가시나 봐요." 굳이 학교 때문에 이사를 가는 경우는 대부분 학군지로 이동을 하기 때문이겠지.
"네?? 아니오. 저희는 양평으로 갑니다." 게다가 서울 양평이 아닌 경기도 양평으로 간다고 하니 "왜 그리로 이사를...." 하는 물음표 가득한 다소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상대한다. 학군지가 아닌 시골학교를 선택한 나만의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대답할 준비도 되어 있거늘, 학군지 이사가 아닌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7살 예비 초등생이 있기 때문에 이사를 계획했고 이제 막 준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고, 지난 주말 우리가 이사할 집도 보고 왔다.
부동산을 통해 총 3개의 매물을 보았다. 전세물건이 그리 많지 않지 않아 다양한 집을 구경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첫 번째 집은 여자들이 선호하는 신축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집이었다. 중정이 조그맣게 있고 자그마한 잔디마당이 있는 집. 다락방이 넓어 물건 수납도 훌륭하고 아직 키가 크지 않은 아이가 뛰어놀기에도 좋아 보였다. 두 번째 집은 한때 연예인이 사셨다며 소개해주셨는데 전세는 아니지만 현재 집주인이 미국에 계시고 매매계약이 잘 안 되고 있는지 집이 맘에 들면 전세로 적극 제안을 해보겠다고 하셨다. 앞에 제법 큰 천이 흐르고, 마당에는 밤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고 꽤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진 곳이었다. 물이 흐르는 백색소음을 들을 수 있고, 다락방에 난 창으로 별 구경이 가능한 집이었다. 세 번째 집은 현재 집주인이 살고 있는 집.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 널찍한 앞마당이 단차를 두고 2개구역으로 펼쳐져있었고, 한켠에 커다란 목련나무가 솟아있었다. 마당 한편에 텃밭과 큼지막한 그늘막아래 바베큐 해 먹을 식탁과 각종 장비들이 보였다. 집안은 거실이 크게 주방과 마주하고 있었고 2층에는 적당한 테라스가 있었다. 2층 복도 폭도 생각보다 넓은 집이었다.
이 중에 가장 마음에 든 집은 세 번째 집이었다. 전원주택 고를 때 한 가지 염두에 둔 점이라고 하면 바로 집주인이 직접 살아보았거나 살던 집을 고르자 하는 거였다. 주인이 직접 사는 집은 확실히 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생되는 소소한 보수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내가 살집을 짓는다고 하면 얼마나 정성과 시간을 들여 지을까. 1층, 2층, 마당에서 집주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7살 아들은 다락방이 있는 다른 두 집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같이 합의를 보았다.
집 보러 가기 전만 해도 온라인으로 매물을 보며 행복한 전원의 일상을 상상하다가 막상 집을 알아보고 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시골 전원주택은 전세대출과 보증보험이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답변을 듣고 눈이 똥그래졌다. 그 동네 전세가 많지 않으면서 수요는 꾸준히 있기 때문에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낚아채 갈 것 같아 불안했고, 시골 전원주택 계약하기 위한 일련의 일들(대출, 보험, 학교 등)을 알아보고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부담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이사 날짜 보다 앞당겨 가기 싫은 마음도 들었고 무엇보다도 지금 집의 세입자도 구하고 있는데 확실시된 계약이 없으니 더욱 초초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다행인 건 모든 상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져갈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닫고, 복잡한 머릿속을 좀 풀어보기로 했다. 해답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내가 원했던 이사 날짜 보다 앞당겨 가는 것과 그로 인해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집보고 온 다음날 짝꿍과 함께 대출, 보험, 유치원, 세입자 결정 등 해야 할 일들을 분담하여 서둘러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계약 안 하면 빼앗길 것 같은 집이라도 내 상황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결하는 계약은 최악의 선택임을 는 것은 무리이며 그 집과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고가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하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생각과 마음이 정리가 좀 되었다.
전세 대출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큰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약간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최근 정부에서 가계대출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하에 시중 은행들에게 대출을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오늘자 신문에서 우리은행은 1 주택자에 대해서도 수도권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중단키로 했다는 기사와 1 주택자까지 투기꾼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칼럼도 등장했다. 금융권 핫한 이슈인 것 같다. 당장 단독주택의 전세대출을 알아보고 이사를 추진해야 하는 우리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부랴부랴 2개 은행에 문의한 결과 일단 공시지가가 나온 전원주택이므로 전세대출은 가능하고, 지금 신청하면 45일간은 유효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에게 45일의 시간이 주어진 셈인 걸까.
집 보러 간 날 자전거 라이딩을 즐겨하는 우리 가족은 집 앞 북한강 산책로를 따라 짧게나마 오후에 라이딩을 했다. 강이 흐르고 산이 병풍처럼 펼쳐 보이는 뷰를 보며 풀냄새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양평에 꼭 이사 오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하는 집과 계약체결, 이사 날짜, 대출, 보험 등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