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선 긋기
친구 시누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했다. 친구 마음이 아닌 주변 상황만 판단하고 친구가 우울증 걸린 거라 단정 짓는 말로 포문을 열더니 친구 아이에 대한 훈수를 엄청나게 두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시누이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 키워본 경험도 없다는 말에 분노 게이지가 더욱 높아졌다.
선을 마구 넘은 그 시누이는 조만간 선을 넘다 못해 친구의 마음을 찌르며 공격할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살아서 자주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는 시누이는 매번 선을 훅훅 넘어오시진 않겠지만, 친구의 선을 잘 만들어 지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선 넘기는 어쩌면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폭력과 다름없지 않을까. 가족이라도 반드시 강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모두 약간씩의 거리를 두는 편이다.
선을 긋는다는 말은 내겐 '모양을 그린다'는 말과 같다.
5개의 선을 그어 만들어지는 것이 별 모양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야 라고 알리는 행위가, 선을 긋는다는 의미이다.
(중략)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이 그러하듯 사람 마음의 모양은 전부 다 다르다.
선을 긋지 않는다는 건, 모양이 없는 액체 괴물처럼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
작사가 김이나 님의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주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만의 선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김이나 님의 '선 긋기'에 대한 철학을 접하고 더욱 명확하게 생각이 정립되었다. 휘둘리지 않고 인간관계를 해야 할 때뿐 아니라 평상시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좋은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타인과는 더욱 그렇다. 애써 지켜온 관계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각자가 정해놓은 선을 잘 만들고 서로가 잘 지켜온 사이였다. 이 사람은 이 부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구나. 이걸 할 때 싫은 기색이 나타나는구나.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알아가는 과정에서 선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김이나 작가는 이를 '배려'라고 한다. 관계에서 배려는 대단한 뭔가는 아닌 듯싶다. 그저 나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 아닐까.
최근 정우성 배우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을 보았다. 이정재 배우와 다정한 호칭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그에게 정말로 사석에서도 정재 씨~ 하며 존댓말로 부르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하며, 왜 이런 호칭을 유지하는지 대답했다. "우리 세대는 거친세대였잖아요. 처음부터 말 놓고 욕설하며 친하게 지내다가. 결국 싸우고 뒤통수치고 그런 걸 너무 많이 봤거든요."라며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이야기했다. 짧은 대답에는 서로의 배려가 담겨있었다. 호칭부터 OO 씨로 부르는 순간 약간의 거리감이 생기며 자연스레 선이 생긴다. 조금은 서로가 멀찍이 바라보며 각자의 선을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온 것이다. 몇 발자국은 떨어진 거리에서 보아야 상대방이 더욱 잘 보이는 법이니까.
반면 무례한 사람에게까지 배려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무례한 태도가 종종 보이면서 내 관계 속에 들어오려는 사람에게는 무관심으로 대응하며 철저히 방어해야 한다. 그래야 얼굴을 봐야 하는 순간이 오면 웃으며 인사와 안부 정도는 건네는 여유가 생기며 나만의 선을 지킬 수 있다.
세상에는 별, 네모, 세모, 마름모, 원 등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이 있다고 나부터 인정하고 그들의 선을 배려하며 내 선도 잘 지키며 살아야겠다. 액체괴물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