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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Mar 22. 2024

잃는 것과 얻는 것

내 인생의 이기주의자가 되리라! 

주변 어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네 나이이때는 아픈 거 하나도 모르고 살았어." 젊은것이 왜 그렇게 골골대냐며 혀끝을 내차신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탓인지 올초 감기 걸린 이후 3개월 넘게 컨디션이 들쭉 날쭉했다. 이제 좀 나았나 싶으면 목이 또 아파오고 몇 년간 잊고 지냈던 비염과도 재회하며 머리가 딩딩거리고 온몸이 피로해진다. 새해부터 왜 계속 아픈 걸까 자책도 해본다. 코로나 때 보다도 더한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인지, 좋지 않은 몸의 컨디션은 마음의 불안함을 부추긴다.  


4년 전 크게 아팠던 경력자인 나는 아픈 증상이 오래가면 '죽음'이란 단어를 습관적으로 곧 잘 떠올린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내가 죽으면 안 되는데... 하며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보곤 한다. 미래의 장례식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보기도 하고 슬픈 마음을 느껴본다. 어떤 날은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다행히 건져 올려진 슬픈 마음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다행히도 '감사함'이다. 아직 눈뜨고 숨 쉬며 살아있는 순간이 새삼 소중해진다. 아이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귀중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나의 죽음을 떠올리면 어느새 아이 눈을 맞추고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게 된다.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등등 애정표현에 관한 언어를 마구 쏟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로부터 애정이 듬뿍 담긴 답장을 받는다. 죽음을 떠올리면서 종국에는 삶(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으로 일련의 '죽음의 사고 프로세스'가 종료된다. 다행이다, 감사하는 감정으로 마무리가 되어서. 그리고 후에 알게 되었다. 나의 이런 사고와 행동이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라틴어)와 매우 닮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에 메멘토모리에 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나온다. 메멘토모리와 아모르파티, 즉 '죽음을 기억하라'와 '운명을 사랑하라'는 죽음과 삶이라는 상반된 의미의 조합이지만 결국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네가 처한 너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태도가 자존 같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운명이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존을 말합니다. 그런데 진짜 자존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도대체 이 자존이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박웅현,『여덟 단어』中)


어린 시절, 부당함을 느끼거나 내 처지를 비관할 때마다 '세상은 공평한 걸까?'라는 순수한 생각에서 '세상은 왜 불공평할까?'라는 부정적 생각으로 옮겨갔다.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때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크기가 대기권을 지나 넘어 우주에 닿을 만큼 높아 보였다. 세상을 조금 살면서부터는 결코 공평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늘 공평함을 따졌던 것 같다. 이를 논하다 보면 나는 늘 불공평의 편이 되었고, 자존감의 키도 늘 작았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늘 잃는 것만 따졌으니 자존감이 높았을 리가 있나 싶다. 


그러나 세상엔 반대급부()가 존재했다. 어떤 일에 대응하여 얻게 되는 이익을 말하는 이 말을 알게 되면서부터 생각의 전환 계기를 맞이했다.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다는 사실 하나가 큰 위안이 되면서 싹둑 잘려버린 줄만 알았던 자존감에도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청조 사기사건으로 모두가 깜짝 놀라며 피해자가 겪을 절망감이 얼마나 클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희대의 사기꾼으로 인해 누군가는 절망을 겪고 있지만, 이 사람의 단골식당이었던 이유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방문객이 300배 넘게 늘었났던 어느 식당이야기도 뉴스에서 다루었다. 코로나로 일상을 잃어가며 많은 사람이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마스크 제조회사만큼은 호황기를 누렸던 것도 반대급부의 비슷한 맥락은 아닐까. 


삶을 살면서 늘 반대급부를 챙기려고 노력 중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고 의식하려 한다. 물론 어떨 때에는 잃는 것과 얻는 것의 무게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잃는 것의 무게가 커지면 우울함 불안함 무서움 등과 같은 마음이 따라올 테지만 그런 와중에도 반드시 '얻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이러한 상황에 무조건 얻는 것만 생각하는 지혜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좀 생겼다. 


올해 초 아픈 덕분에 건강을 챙기고, 면역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비타민c 메가도스(고용량 복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비타민c가 주는 효능과 궁극적으로 몸 장기에 미치는 영향들. 부작용에 대한 대응법 등을 공부하게 되었고, 다른 영양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내 몸상태에 맞게 적용하니 서서히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병원을 자주 들낙거리며 약을 달고 살던 아이도 약 없이 감기를 관리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도 얻게 되었다. 내가 면역력이 계속 좋아 탈없이 지냈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지 않은가!  


앞으로도 늘 얻는 것만을 생각하는 내 삶의 이기주의자로 살아갈 작정이다. 인간관계에서 혹은 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될 노릇이지만, 내 인생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얻을 것만 생각하는 '핵이기주의자'가 되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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