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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선호가 Aug 11. 2020

서점에 '앉아' 책을 보는 것은  잘못된 걸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의 부재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문고'가 있었다. 지방 터미널 앞에 있는 서점이라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켠에는 문고판 서적들과 월간 만화들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의 일상은 하교 후 그곳 한 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신간들을 읽는 것이었다. 그 때는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도 못했다. 서점은 당연히 책을 고르는 곳이고 읽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내게 허용된 공간이 감사할 뿐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교보문고가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영업이 잘 되지 않는가 싶더니 새롭게 리노베이션을 한다고 서너달 문을 닫았다. 너무나 아쉬웠다. 나의 서운함을 알았는지(?) 교보문고는 서점이 위치한 건물 내 작은 짜투리 공간에 신간들을 전시해 놓고 임시 매장을 운영했다. 마치 옛날 어린 시절 동네에 있던 작은 문고를 연상케하는 그런 분위기여서 조금은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었다. 얼마나 더 멋진 공간이 생길까? 앞으론 더 자주 올 수 있겠구나  행복한 마음과 기대에 차서 서점의 오픈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오픈날! 오픈 첫날 서둘러 가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붐빌까봐 꾹꾹 참았다.

일주일을 버티고서는 부러 서점을 찾았다.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안고...


하지만... 대실망이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1도 없었다. 쭈그리고 앉아서라도 읽을 수 있는 공간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더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청난 실망감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이건 뭐지???내가 뭐 너무 큰 걸 기대한 걸까? '


누가 잘못된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대로를 하나 건너면  '아크앤북'이라는 서점이 있다. 그곳은 지나치리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좀 번잡스럽다. 그게 싫어서 나는 교보문고를 좋아했다. 익숙하기도 하고 원하는 책은 거의 다 구해 볼 수 있는 곳이어서... 그래서 가급적 책 구매는 교보에서 했고 멤버십 등급도 꽤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나의 그런 신의를 교보문고는 조용히 저버렸다. 아니 뭐 그냥 나혼자의 신의였고 버림도 어쩌면 나혼자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뭐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냥 왠지 말없이 오래 알고 지낸 절친으로 부터 갑작스런 절교선언을 받은 기분이다.


'야, 이유가 뭐냐? 내가 그렇게 싫었어? 말이라도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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