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봄바람이 마지막 한숨 쉬며 흩날리는 계절. 벚꽃도 자취를 감추는 날이었던 것 같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난 나는 출근을 준비하기 위해 발걸음을 화장실로 옮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거울을 확인했다.
#2. 어느 날 내 머리 위 파란 꽃이 피었다.
샤워를 할 때도, 그리 깨닫진 못하였다. 다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무언가가 있다고 자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 무감각한 편은 아닌지라 약간의 불편함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크게 나의 아침 패턴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간지러운 정도였다.
파란 꽃이었다. 처음 그것을 쳐다보았을 때의 나의 느낌은 신기함도 현실부정도 아니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그리움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물건 같은 느낌이었다.
손을 머리 위로 들어 꽃을 만져보았을 때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각이 다가온다. 일을 하는 약 6년간 지각 한번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초조함이 에워싼다. 왜 하필 파란 꽃이란 말인가. 문 밖으로 향하기가 겁이 난다.
근데 나는 문득 의문 속에 휩싸였다. 무엇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파란 꽃을 보게 될 사람들의 시선일까 혹 약간의 피가 묻어버린 나의 머리카락을 들킬까 봐서일까. 아니면 파란 꽃이 다시 자랄까 봐였을까.
#3. 처음은 아니다.
내가 꽃을 죽인 것은 사실 처음은 아니다. 2년 전쯤에도 푸르스럼한 꽃이 이마에 돋았다. 따가운 햇살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다 보니 무언가가 이마에 생긴 느낌이 들었다. 마침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어 살짝이나마 비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명 꽃이다.
자라나는 꽃을 이마에 달고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야 웃음으로 넘길 수 있지만, 하루에 3L가 넘어가는 물을 보충해야 되고, 햇볕에 오래 나가면 바로 시들어 버리곤 한다. 이제 내 몸의 일부인데 그래도 이왕이면 생기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꽃을 길들여 가던 도중 꽃은 점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자란 가시로 나를 찌르기도 하고 잠을 잘 수 없게 숨기고 있던 꿀로 벌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하나씩 하나씩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내 인생은 꽃에 대해 많이 의존하는 삶이 되었다. 어쩌면 꽃 그 자체가 되었다.
이제 이마에 꽃이 없던 적의 나와 현재의 나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게 되었다. 행복한 삶이다. 외롭지 않고, 항상 말을 걸 상대가 있고 그걸 들어주는 꽃이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렇게 나에게는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꽃은 더 이상 나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가 아닌 나의 삶을 빼앗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꽃과 멀어지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꽃을 죽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