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빛의 산란
파란색의 색소를 가진 동물은 자연계에서 매우 드물다고 익히 알려져 있다. 파랗게 보이는 동물은 있지만 실제로 푸른색을 지닌 동물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이는 파란 꽃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우리가 보는 파란색은 특별한 구조에 의한 빛의 산란으로 인한 착각이다.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게 어려울까 “보이지 않는 것”을 사실은 보인다고 하는 게 더 어려울까. 전자의 경우 착각이 되고 후자의 경우 혼돈이 돼버린다.
정렬되지 않은 세계에서, 파란 꽃은 이의 경우에는 착각으로 남게 된다.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5. 착각의 세계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지금 당장해야 하는 것은 파란 꽃을 어떻게든 죽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 몸의 일부이자 내 삶의 조각이 돼버린 것이다. 그 착각의 꽃을 꺾는다는 것은 나를 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착각임을 깨닫는다 한들, 내가 원래 믿어왔던 세계를 저버리는 것은 피폐함을 초래한다. 온전함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존재하게 된다.
어렸을 때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모두가 그러하듯이. 산타는 누구나 환영하는 존재이다.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감사함, 존경함 같은 감정 과는 다르다. 본 적이 없는 존재에 대한 신비함과 아무 노력 없이 얻는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다. 혹은 진실을 외면한 착각과도 같다.
때는 오기 마련이다. 착각은 반드시 깨게 되는 타이밍이 있다. 그때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빨간약을 먹을 것 인가. 대부분은 파란 약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빨간약을 택했고.
#6. 죽인 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훔쳐 깨달아 보았을 때 아스라이 하얀빛이 일렁일 때, 혼돈 속에서도 흐릿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있기에 길은 생기기 마련이다. 나를 잊기 위해 나를 버리기 위해 나를 묻기 위해 준비했던 관짝 앞에서도 두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결심한다. 어쩌면 결실을 홀로 이루기 위하여 놓치기 싫었던 또는 놓아야 했던 것들 앞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앞으로.
파란 꽃은 더 이상 파랗지 않다.
그렇게 나는 오늘 지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