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5 -사람을 믿을 수가 없대
한이는 결국 원하는 의대에 진학했다. 처음엔 지방 의대에 들어갔지만, 1년 뒤 반수를 통해 더 높은 순위의 의대로 옮겼다.
서울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의 길은 단단해 보였다.
“아버지가 병원장이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겠지.” 서빈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이 엄마는 한때 여고 국어교사였지만 지금은 살림에 전념하는 전업주부. 시리우스에선 늘 ‘교사 모드’였다.
“자, 자! 집중! 오늘도 뇌세포를 깨워봅시다.”
손때 묻은 수첩엔 강연에서 들은 문장, 아들이 들려준 말, 웃긴 유머, 인생의 메모들이 알뜰히 적혀 있었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끝이 없다. 어떤 날은 조금은 민망한 이야기까지 오르내린다.
“자기들, 수레 탄 돼지 얘기 알아?”
시골의 어느 집, 암퇘지 한 마리를 키웠단다.
때가 되자 돼지를 시집보내려고 수레에 태워 아랫동네로 내려갔다고.
처음엔 돼지가 놀라 난리를 치더니, 결국 신방을 차려 거사를 치렀단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돼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단다.
막 찾아다니다 보니, 글쎄 전날 타고 갔던 그 수레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더라는 거다.
주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얼마나 애절하던지~!
깔깔깔— 하하하— 식당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호승이 엄마는 시리우스 중 가장 젊고, 날씬하고, 예뻤다. 게다가 입만 열면 남편 자랑.
“우리 신랑, 진짜 가정적인 건 둘째치고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몰라~”
다들 혀를 찼지만, 그마저도 얄밉지 않았다.
점심때 만나 저녁까지 수다를 떨고, 헤어지면서도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다음 달에도 꼭 보자!”
돌아서자마자 단톡방은 다시 요란하게 울려댔다.
돌아오는 차 안. 붉은 노을이 창밖에 드리워졌다.
조용히 운전하던 찬희 엄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조카 둘, 시집갈 생각을 아예 안 해.”
찬희네는 전자부품 사업체를 운영하는 집안.
시리우스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축에 속했다.
“남자들이 다 재산 보고 다가오는 것 같대. 사람을 믿을 수가 없대.
"큰애는 한때 정말 좋아하던 남자 있었는데…
집안 반대로 헤어지고는, 결혼을 아예 포기했어.
지금은 그냥 여행 다니고, 책 읽고, 공부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
차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문득 누군가 들려줬던, 국내 유명 대기업 회장의 딸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끝내 집안에서 반대하자, 그 딸은 스스로 생을 접었다는 이야기.
‘돈도, 지위도 소용없을 땐 아무것도 소용없구나…’
창밖의 노을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 삶일까.
같은 세상, 다른 얼굴과 무늬.
그게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시리우스는 그렇게 여전히 모이고, 여전히 웃고, 여전히 조심스레 서로의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웃음 사이에 질투도, 미안함도,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말들까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