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10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서빈엄마는 안도감에 얼굴빛이 한결 밝았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바쁜 남편에게 모임 간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웠는데, 비가 오니 하루를 쉴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
서빈네는 건축일을 한다. 비 오는 날은 자연스레 쉬는 날이 된다.
집을 나서며 찬희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업 문제로 중국에 나갔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찬희엄마.
“매달 만나도 새롭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 같아.”
시리우스는 늘 그랬다.
오늘은 준혁이 엄마가 운영하는 공방이 모임장소. 그 고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 같던 사람이 옷가게 겸 공방을 열었다는 소식에 이번 모임은 그곳에서 열기로 했다.
수원역에서 찬희엄마를 만났다. 서빈엄마는 중국에서의 시간이 순탄치 않았음을 직감했다. 늘 당당하고 활기찼던 그녀의 눈빛에 흔들림과 피로가 스쳤다.
“자긴 행복한 줄 알아… 한국도 힘든데, 중국은 더했어.
지금 전 세계가 다 어려워. 바쁘다고 툴툴대지 말고, 그게 다 복이야. 살아 있는 것, 일할 수 있는 것—그게 진짜 복이지.”
그 말엔 진심이 묻어났다.
부천의 공방에 도착하자 시리우스 엄마들은 회포를 푸느라 난리였다. 점심 먹고 수다, 커피 마시고 수다, 옷을 입고 돌아가며 패션쇼. 기꺼이 한두 장씩 옷을 담고, 저녁이 되어도 헤어질 기미가 없었다.
“자기들~ 조아래 막국수 진짜 맛있다? 함 먹어볼래?” 지현엄마가 바람을 잡는다.
모두가 회장니~임 외치며, 서빈엄마를 바라본다.
“일 년 만에 다 모였는데... 그럼, 맛 좀 볼까요?”
“아싸~!” 엄마들의 환호성에 가게는 다시 들썩인다.
저녁 막국수를 앞에 두고, 준혁이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들 내가 왜 공방을 열었는지 궁금하셨죠? 오늘은... 솔직히 말할게요.”
모두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우리 신랑... 작년에 명퇴 순번에 들어 퇴직했어요. 한동안 직장 못 구해서 속이 타들어가는데, 어느 날 밤... 몰래 술 마시고 울더라고요. 그거 보고... 그냥, 제가 저질렀어요.”
“여태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만 한 당신, 이젠 좀 쉬어. 평생 가족 위해 산 당신, 이번엔…
내가 당신을 위해 한번 살아볼게.”
그렇게 시작한 가게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하루 종일 손님 하나 없던 날도 많았어요. 이러다 가겟세도 못 버는 거 아닌가...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자다가 눈을 떴는데 신랑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어요.
‘자기야, 미안해. 난 평생 호강만 시켜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내 걱정 말고, 자기 하고 싶던 공방일… 그냥 해.
내가 벌어서 가겟세도 내주고 생활비도 챙겨줄게.’”
엄마들의 눈가가 젖는다. 누군가 준혁이 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
“넌... 그런 용기라도 냈잖아. 나는... 그런 말도 못 해보고, 신랑 볼 면목도 없어.”
서빈엄마는 마음이 뭉클했다.
저마다의 사연이 다르지만, 그 마음을 품고 함께 울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견딜 수 있구나, 싶었다.
이토록 진심 어린 연대는 아무 데서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