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그린 Apr 01. 2023

숏컷 애즈펌은 어려우세요, 손님.

‘머리를 짧게 잘라야겠다.’ 불현듯 든 결심이었다. 머리를 감아야 할 때마다 한숨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머리를 말릴 때 20분을 말려도 축축한 기운이 남아있는 게 싫었다. 바닥에 무수히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매번 정리하는 것도 귀찮았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숏컷을 한 여학생들이 멋지고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미용실을 찾았다.


사실 난 숏컷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남자 머리 기장까진 아니고, 듀컷이라 불리는 기장 정도로. 동그스름하게 떨어지는 짧은 머리였다. 앞 머리는 내지 않았다. 숏컷을 한 내 모습은 상상과 달랐다. 학교에서 마주치던 다른 학생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더 짧은 머리를 찾았다. 어차피 이상해질 거, 과감해지자 하고.




나는 남자 애즈펌 머리 사진을 여러 장 가져갔다. 어플을 통해 남자 머리를 내 얼굴에 합성해보기도 했다. 미용사가 내게 어떤 머리를 원하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자랑스럽게 내가 조사한 자료들을 보여드렸다. 미용사는 잠시 고민하듯 하더니 내 모질로는 애즈펌이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해 줬다. 반곱슬이 심하고, 매직을 주기적으로 한 머리라 펌이 잘 안 살 것 같다고.


숏컷만이라도 하면 안 되냐고 물으니, 미용사는 난색을 표했다. 미용사는 차라리 머리를 중단발로 자르고, 매직을 하길 권했다. “그래도 해주세요!”라고 고집을 피울 수 있었지만, 그러기 어려웠다. 나는 이미 머리가 이상하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경고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의 선택에 자신이 있으면 그 마저도 개의치 않을 수 있지만, 나는 아직 그만큼 자신이 있진 않았다.


결국 나는 중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볼륨매직을 했다. 5만 원을 예상하고 갔는데, 9만 원을 내게 되었다. 머리는 잘 됐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미용실을 나왔다. 어딘가 마음이 헛헛했다. 거리에 다니는 남자들은 전부 숏컷을 하고 있었다.




모질이 반곱슬인 남자에게도 숏컷은 어렵다고 할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짧은 머리로 볼륨매직한 남자들도 있었다.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미용사를 원망할 마음은 없었다. 혹시나 내가 불쾌하게 받아들일 까봐 미용사 분도 많이 눈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냥 의아했다. 유독 여자에게 숏컷이 어려운 선택지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미취학 시절 나는 숏컷 머리였다. 이때는 듀컷도 아닌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민 숏컷. 거기에 뽀글 머리 파마도 했었다. 나는 내 어릴 적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때의 나에게도 미용사는 모질이 반곱슬이라 숏컷은 어렵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엄마가 머리를 해달라고 강행했을까? 지금의 엄마는 내가 숏컷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시는데 말이다.


그리고 중장년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 숏컷을 하고 있다. 여자가 숏컷을 하면 안 된다고 온 세상이 달려들 땐 언제고, 그 제한은 중장년이 되면 풀리나 보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듯하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또 사람들이 아니라고 달려들겠지만.




다음에는 누가 뭐라고 하든 숏컷 할 충분한 용기가 생기길 바라본다. 남들 보고 멋지다 생각하지만 말고 스스로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스스로의 외모에 상관없이 조금 더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당분간은 나의 모자랐던 용기만큼 불편함을 감수해야겠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Giorgio Trovat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