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도대체 무슨 시험이길래

이렇게들 찾아오시나요

by 지영은

네 번째 GMAT 시험을 며칠 앞둔 토요일 오전이었다. 학원 수업에 가기 전 컵을 갖다 두려 부엌에 가는데, 깔깔 웃으며 드라마를 보던 엄마가 "이거 나중에 공부 끝나면 한 번 봐봐. 너무 재미있는데 또 재밌기만 한 게 아니야." 하고 던진 말에, "엄마, 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하고 손쓸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수도 없이 본 GMAT 후기에서 보통 3개월 정도 학원을 다니고 첫 시험을 봐본다고 하길래, 주말반 3개월을 다니고 무턱대고 첫 시험을 봤다. GMAT은 문제를 다 풀고 Next 버튼을 누르면 자비 없이 점수가 바로 뜨는데, 눈앞에 보이는 그 점수는 어떤 후기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목표하는 학교의 지원자 평균에 못 미치는 것은 당연하고, 처음에는 이런 점수를 받았지만 몇 개월 더 이렇게 저렇게 하고 점수가 올랐다는 후기에 나오는 '이런 점수' 보다도 한참 낮았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이 정도 점수를 받는 사람은 없던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처음이라 긴장한 탓도 있어 이게 내 진짜 점수가 아닐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그리 낙담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그게 가장 긴장하지 않고 본 시험이었다.


주말에만 학원에 다니는 걸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평일에도 시간을 더 써야 하는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 퇴근 후에 매일 숙제를 하거나 수업을 듣는 일상은 열심히 사는 듯한 기분에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과 공부 모두에 에너지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당시에는 24년 1월 입학 라운드에 지원하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 6개월 안에 GMAT과 TOEFL, 에세이까지 끝내야 했는데, 역시나 처참한 두 번째 점수를 보니 이대로라면 어려울 것 같았다. 이렇게 준비를 하다 중도 하차하고 일을 계속하는 그림이 그려지는지 자문해 봤다. 내려놓기에는 이미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고, 그만한 의지였다면 이미 내려놨을 거였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니 공부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당연히 많아졌지만, 이제는 정말 점수가 나와야 될 시기에 가까워지며 불안은 점점 커졌다. GMAT은 외운 것을 바탕으로 푸는 시험이 아니라 수능 국어 영역을 영어로 푸는 느낌에 가까워서, 유형에 익숙해지고 사고 패턴을 트레이닝해야 했다. 그런데 나같이 영어권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거나 그 정도로 영어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영어 자체도 보완이 되어야 했다. 이미 영어가 뒷받침되는 경우에 비하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게 당연하다는 건데, 빠르면 1개월에서 보통 3개월 만에 끝냈다는 학원 후기들에 기준을 두다 보니 불안에 절망과 자괴감이 더해졌다. 그래도 혼자 문제를 풀어봤을 때 오답 비율이 부쩍 적어지고, 이제야 좀 감이 잡힌다고 생각했던 것이 네 번째 시험 전이었다. 보통 오전에 시험을 치르니, 학원 가기 전에 모의 테스트를 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선생님과 상담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실제 결과와 거의 비슷하다는 모의 테스트 점수는 이 전에 본 시험들 보다도 낮게 나왔다. 심장이 배꼽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공부한 만큼, 익숙해지는 만큼 점수가 오르지 않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점수가 나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손이 덜덜 떨리고 표정이 사라졌다.


갑자기 그렇게 우는 나를 보고 놀란 엄마는 오늘은 학원을 가지 말고 쉬면 안 되냐고 했다가, 그럴 수는 없다고 하니 그럼 학원만 갔다가 오늘은 쉬자고,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했다. 학원에 가서 선생님께 상황을 말하니, 풀어오는 걸 봐도 점수가 이렇게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혹시 시험 볼 때 긴장을 많이 하냐고 물으셨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기도 하고 끝나고 나면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니, 긴장을 많이 하면 점수가 잘 나올 수 없는 시험이라며 시험 전에 너무 긴장을 많이 하는 학생들이 약을 처방받으러 간다는 병원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급하면 더 안된다며 24년 8월 입학 라운드에 지원(이때가 더 많은 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시기인데, 그저 마음이 급했다.)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하셨는데, 결국 그렇게 될 거였지만 이때 목표를 수정한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첫 정신과 상담에 괜스레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됐다. 드라이한 듯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GMAT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내 이야기를 하니 도대체 무슨 시험이길래 그 시험 때문에 긴장하고 스트레스가 큰 학생들이 이렇게 오는 거냐며 의아해하셨다. 그 말에 생각보다 더 많은 동지들이 있었구나 싶어 어딘가 위안이 됐다. 시험 전에 먹는 약을 받긴 했지만 그건 오히려 선택 사항이었고, 평소의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세로토닌 조절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개월 동안 5번 볼 수 있는 GMAT의 마지막 시험에서까지 만족할만한 점수를 만들지 못했다.


KakaoTalk_20250911_124322084.jpg 내가 좋아하던 식당에 가준 엄마. 이런 위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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