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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이 Jul 11. 2022

내가 우울증이라고?

알고 보면 흔한 우울증 증상들

‘안 좋은 일은 자신에게 생기지 않을 것 같다는 망상’

예전 회사 화장실에 <실패하는 사람의 유형 5가지>가 붙어 있었다. 그 중 마지막에 있던 글귀가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안 좋은 일은 자신에게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패한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매일 안 좋은 사건 사고를 보면서 은연중에 그것이 자기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요즘 우울증이 흔하대.’라고 쉽게 얘기 듣고, 하는 시대지만 스스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우울증에 걸릴 줄은 몰랐다.


‘흔해서 지나쳤지만 점점 심해졌던 우울증 신호들’


1.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하게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쫑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문구이기에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근데 정말로 시간이 지날수록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으며, 무언가를 하거나 생각할 힘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기력함이 지속될수록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커졌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생겼다.


2.     내가 그렇지 뭐

우울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업무능력이 저하되었고, 실수가 빈번해졌다. 힘내서 고치고 노력할 에너지가 없어, 그저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겪는 실수와 어려움들이 다 ‘내가 운이 나쁘고 부족한 사람이어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옷가게에서 내가 사려는 사이즈만 없을 때도 ‘그래 내가 운이 없지’ 라며 기분이 쳐지고, 예약하고 가려던 음식점을 친구 실수로 못 가게 되었을 때도 ‘이 친구가 나랑 밥을 먹으려다 이렇게 된 거야. 나는 정말 운이 안 좋아.’라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으면, 내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 내가 좀 더 강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자기를 비하하면서 자존감은 낮아졌고 더 나은 미래가 올 거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었다. 부정적 사고 회로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많은 상실감과 슬픔을 느꼈다. 나는 할아버지와 매우 가까웠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후회와 슬픔으로 한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단순히 가족을 잃어서인지, 회사 생활, 대인관계 등 힘든 일이 겹쳐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달이 지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샤워하다가, 퇴근하다가, 출근길에도 자주 눈물이 나고는 했다. 마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으며, 마치 이 전의 기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4.     자는 것도 깨는 것도 너무 어려워

잠드는 게 어려워서 몇 시간 동안 잠을 못 자거나, 자더라도 몇십 분마다 깨어나기도 했다. 회사와 관련된 악몽도 자주 꾸었다. 그러다가 우울증 약을 먹고 병가를 내게 되면서 잠을 하루에 14, 15시간도 자게 되었다. 누가 깨워줘야 겨우 깨어날 수 있었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잠을 못 잘 때도, 너무 잘 때도, 개운하거나 상쾌하지 않았다.


5.     쿠크다스 멘탈

나는 외부 영향에 점점 더 연약해졌다.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내거나 나를 평가하면, 온 몸으로 그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내 잘못이 아닌 일들, 예를 들어 길에서 누가 치고 지나가거나, 누가 싸우는 고성을 듣거나 하는 일들에 몸이 떨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집에 오면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자주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심장이 너무 빨리, 크게 뛰어서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으며, 너무 불안해졌다. 예전이라면 지나칠 수 있는 일들도, 교통사고 충격을 온 몸으로 받는 것처럼 외부에 흔들렸다.


6.     전에 알던 내가 아냐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너무 쉽게 피로해지고 지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예전만큼 많이 웃지도, 활동적이지도 않게 되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모두가 나를 잊을 수 있다면 사라지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를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친구들과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얘기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 볼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반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친구들은 자신의 친구가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비단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우울증 증상은 다양하지만 생각보다 낯설거나 이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살면서 한 두번씩 겪었을 이런 감정들이 더 심해지거나, 오래가지는 않는지 자신의 마음을 항상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슬프고 무기력할 수 있다. 근데 그런 감정이 며칠씩, 몇 주씩 지속되거나 그 생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면 마음이 많이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면밀히 관찰하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의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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