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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30. 2023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 하는 당신께

처음, 시작,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이의 입장에 대하여

택배가 오지 않는다. 벌써 일주일.

 내가 사는 곳은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이다. 대기업의 하루 배송, 로켓 배송 광고들이 판을 쳐도 내가 사는 곳은 해당 사항 없이 늘 여유롭게 온다. 그래서 무언가를 주문할 때 여유를 잡고 주문하는 편이다. 그렇게 친구에게 선물할 휴대폰 케이스를 주문했다. 여유를 잡고 주문해 선물을 줄 당일까지 계산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선물을 주기 2-3일 전까지 다가왔을 때, 무언가 잘못된 것이 느껴졌다.

 당일 출고를 받아 빠른 택배 배송을 위해 새벽에 주문했다. 디자인을 고르는 것조차 어려워 웹 서핑만 2시간을 했다. 신중하게 고른 휴대폰 케이스를 주문한 건 새벽 6시. 시간이 잘못된 걸까? 내 택배는 지역 내에 도착했다는 위치만 떠있을 뿐, 그곳에서 몇 날 며칠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집 앞으로 묵직한 박스 하나가 놓이며 바삐 자갈밭 밟는 소리가 멀어졌다.

 도착한 택배는 내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드시던 약초즙 한 박스였다. 건강을 위해 챙겨드신다던 약초즙이 이제야 배송 왔다며 마음을 놓고 계시더라.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얼마 전 집 앞에 택배 탑차가 왔는데, 잔뜩 긴장한 앳된 아이가 택배 기사님께 일을 배우고 있었다고 하셨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듯한 얼굴이었고, 사회생활 자체가 그곳이 처음인 느낌이었다고. 평소 서글서글한 인상의 우리 동네 담당 택배 기사님은 웃는 얼굴 뒤에서 굉장히 엄하게 아이를 가르치고 계신 것 같다고. 그래서 차마 전화해서 재촉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 너도 기다리라고. 정 급한 것이 아니면 더 기다려주자고.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 말씀을 듣고 나니, 움직이지 않는 택배를 두고 전화로 차마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벌써 기억이 흐릿할 나의 처음

 햇수로 벌써 4년 차인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꽤 좋은 글감이 되어주고 있다. 아무런 경력도 없이 이름조차 남자인 줄 알고 부르셨던 고깃집에서 소주를 처음 잡아보았을 만큼 나는 세상 물정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후레시'가 '참이슬'인 줄도 모르고 '후레시'는 없다고 답하니 옆 테이블을 가리켜 보이시던 손님의 어이없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사장님과 같이 일하던 오빠들은 그를 두고두고 지금까지 놀린다.


 바짝 긴장해서 누군가 부르거나 크고 작은 소리에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어떻게든 해내려 했다. 집에 오면 진이 빠져 잠에 빠지기 바빴다. 그렇게까지 힘든 알바인 줄 알았다면 연락도 드리지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문자를 넣었던 나는 '원래 일이 다 힘든 거야'를 속으로 수십 번 되뇌며 이곳에서 버텨야 다른 곳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그런 나를 예뻐라 해주셨던 손님과 사장님이 있었기에 내가 이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기도 했다. 이제 4학년이라 조만간 그만두어야 하기도 하겠지만. 내게 좋은 힘이 되어주셨다.




누군가의 '처음'을 바라보는 이에게

 이 글은 내가 미래 취업할 직장 상사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미 한 직업에 몸담고 종사하고 계신 분이든, 직업이 아니더라도 소속된 어딘가에서 '한 가닥' 하고 계신 분이든. 새로 들어온 사람을 품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감히 당신의 지난 노력과 힘듦, 그리고 성과와 수많은 날들을 뒤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날들을 지나온 당신이니만큼 이제야 발 디딘 '처음'을 그저 지켜봐 달라고. 올바르고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달라고. 가다가 엉뚱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이상한 길을 고집해도 잘 어르고 달래어 당신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고. 당신의 길을 밟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아르바이트 내에선 얼떨결에 '최고참'을 달게 된 터라 새로운 적응이나 어려움은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내 미래는 새로운 변화와 적응이 필수적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와 적응에 굉장히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내가 어긋난 것 같으면 곧장 숨어버린다.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아서, 감히 당신께 도움을 청합니다. 제 어리숙한 걸음을 같이 걸어주세요. 존경하는 마음으로 길을 밟을 수 있도록.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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