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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Jul 10. 2023

'지금'을 살기 힘겨운 이들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게 습관인 나에게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너는 어쩌다 그렇게 미래를 걱정하게 된 거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용돈 없이 학창생활을 보냈고, 어쩌다 받는 용돈은 무조건 저축했다. 미래의 내가 쓸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주기적인 용돈이 없으니 돈에 대한 개념이 있을 리 만무했던 나는, 고등학교 말미에 시작한 아르바이트 첫 월급을 그 달에 다 써버렸다. 그리고 가계부를 썼다. 이유는, 미래의 내가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내일 걱정'은 그때부터인 듯하다.


 나의 불안은 대체적으로 시험, 직업, 돈, 그리고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빛을 발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다고 치면, 나는 학기 시작 때부터 복습을 꾸준히 한다. 매일 같이 조금씩이라도 공부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하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시험 전날 밤. 나는 하루 종일 유튜브를 끼고 산다. 불안해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책을 펼쳐도 심장이 쿵쾅거려서 도저히 글을 읽을 수 없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쾌락이 필요했고, SNS의 짤막한 영상들이 나의 만족지연을 방해하기 좋았다. 결국 펑펑 놀다 하루 밤샌 친구와 꾸준히 한 나의 성적이 비슷하거나 조금 뒤처지는 결과가 허다했다.

 전공 공부를 하다가도 '내 길이 이게 맞을까?' 하는 마음에 자격증 공부를 손에서 놓고 다른 직무의 공부를 시작한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취미, 나쁘게 말하면 시간 낭비를 하다 결국 다시 돌아와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반복해 다른 길로 돌아간다. 조금이라도 저조한 성과나 행동을 보이면 곧장 생각한다. '이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다시 다른 직무를 찾아 방황한다.


 나의 가장 큰 불안은 돈이다.

'세상은 돈으로 다 된다'는 말. 드라마나 영화 속 재수 없는 부자들이 돈을 흩뿌리며 하는 소리가 아니다. 만원, 이 만원. 지폐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내게는 그 말이 너무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미래의 내가 아프면, 미래의 내가 무너지면, 미래의 내가 길바닥에 나앉으면, 하는 이유들을 '망상'해가며 돈을 모은다. 모순이 있다면 남에게는 잘 쓰고, 내게는 야박하리만치 커피 한 잔 사 먹을 때에도 고민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 돈에 대한 내 불안의 모순이다.

 또 다른 큰 불안은 관계다.

사랑하는 이와, 각별한 이와 미래에는 헤어지게 될까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기류가 흐를 때면 '생각'을 넘어서서 곧장 최악으로 향한다. '이 애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이러면 어쩌지'로 흘러버려 결국은 그 원인을 내게로 귀인하고 자책한다. 동굴로 들어갔다 상대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경험이 허다한 날들. 그런 감정소모에 지칠 때 즈음 알았다.

'나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살고 있구나.'



 미래를 사는 사람에게 가장 고달픈 것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안이다.

남에 의해 깎아내려지는 것이 아닌, 환경에 의해 갉아먹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나를 못살게 구는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운 늪과 같다. 이들에게 '불안해하지 마! 오늘을 살아!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즐겨!' 하는 말들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니까.

 어느 날,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불안해하던 나는 그제야 알았다. 지금껏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나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음에도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내가 상대와 다른 시점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나와 있는 '지금'을 살고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하거나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고, 나는 상대가 없을 수도 있는 '미래'를 살고 있어 그런 말에 타격을 크게 받았다.


 누구에게나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우리 모두 그렇다. 미래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불안한 마음에 점집에도 가고, 무당이나 신에게 빌어도 본다. 우리는 그렇게 어쩔 수 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이제는 그 불안을 좀 안아주려 한다. 나의 불안을 안아주며 읊어줄 말은,

'우리는 '지금' 행복해.'

'나는 '지금'이 사람과 있어.'

'나는 '지금' 길바닥에 나 앉지 않았어.'

'나는 '지금'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어.'


 '지금'의 나를 내가 볼 수 있도록 읊어주고 짚어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을 살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나를 바라보길 바란다. 오늘의 나는 미래를 사는 나보다, 생각보다 행복할 수 있으니까 꼭 돌아보자. 오늘의 나는 분명히 작게라도 행복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그만 불안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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