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MZ Jul 30. 2022

H.A.U? (잘 지내?)

 에세이라니 (by. 김루시)

좋아하면 뭐든 넘치기 마련이다. 굳이 그게 술일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느 여대 학교 후문에서 자취할 때 일이다. 월세에 보탬이 되고자  자취방에서 걸어서 2분 걸리는 칵테일 바에서 주 2회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칵테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칵테일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 사장님은 직장일과 칵테일 바를 병행하다가 아이가 태어났다며 가게 일에 소홀했다. 물론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들은 모든 재료를 일일이 사진을 찍어 보내야 했고, 가게에 자주 나오지 못한 사장님은 걱정이 되었는지 우리를 CCTV로 지켜보고 있다는 뉘앙스를 계속 풍겼긴 했다. 

  

  나는 칵테일 사진이 담긴 매뉴얼 한 장을 받았다. 술에 어떤 리퀴드와 어떤 양이 들어가는지에 대한 설명서였다. 나는 첫날부터 0.5 온즈, 1온즈 등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야 하는지 숙지하면서 손님을 기다렸다. 연습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이십 대 초반에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연습 삼아 만들어 먹어 보지도 않았다. 손님이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주문을 하면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진, 보드카 등 0.5온즈, 1온즈 정확히 넣고 아이스티를 넣고 레몬을 사진처럼 그럴듯하게 올려놓고 손님에게 드렸다. 혹시 맛이 이상하면 어쩌나 싶어서 마시는 모습을 쳐다봤다. 칵테일 맛으로 클레임을 거는 손님은 다행히 없었다. 나는 목요일 금요일 저녁 5시에 오픈을 해서 손님을 기다렸다. 근처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일이 끝나고 오거나 술을 키핑 했던 분들이 오는 거 말고는 손님이 대체로 없었다.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한 두 명씩 오는 터라 5시부터 10시까지는 오픈 뒤에 늘 시간을 때우는 게 일이었다. 어느 날부터는 내가 일하는 시간에 한 명도 오지 않아서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퇴근한 적도 있다. 또 어느 날은 심심해서 매주 목요일에는 친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친구를 부르면 돈을 다 내는 호쾌한 성격이 있던 지라 친구들이 마신 술값을 모두 내버렸다. 그런 날은 아르바이트비보다 높은 술값이 나와 가게 외상으로 올려주고 퇴근했다. 어느 날은 그 당시 사귄 애인도 불렀는데, 쓴 맛의 술을 꽤 좋아하는 친구였다. 좋아하는 마음에 1온즈를 넣어야 하는 술에 2온즈를 넣어줬다. 그때 클레임을 처음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술이 이렇게 쓴 술이었나?”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술을 좋아해서 리퀴드를 더 넣었어”라고. 좋아하면 뭐든 넘치기 마련이다.  그는 내게 자신을 취하게 해서 어떻게 하려는 거 아니냐고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했다. 없는 마음이 아니었기에 부정하진 않았다. 아쉽게도 그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곧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칵테일 바에서 일하는 게 좋았다. 칵테일 바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랑 친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윤남이, 혜수랑 일 끝나고 영화도 보고, 혜수랑은 내 자취방에서 같이 향초를 만들어서 나눠가지며 시간을 보냈다. 스무세 살의 나는 칵테일 바에서 일하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름이 되자 사장님이 매출을 올리고 싶다면서 생맥주 기계를 들여왔다. 가게 문에 4+1이라는 맥주 이벤트도 열었다. 이벤트를 보고 건너편 슈퍼 아주머니와 그의 친구들이 오기 시작하고, 동네 주민들이 점점 많이 왔다.  생맥주 기계가 들어오고부터는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날도 생겼다. 슈퍼 아주머니는 잘생긴 윤남이 어디 갔느냐며 윤남이가 알바 나오는 날을 물어보기도 했다. 어떤 남자 손님은 혜수가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를 찾는 손님도 생겼다. 맥주 이벤트 때 왔던 단골이 있었다. 단골이 목요일마다 친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술을 먹고 그 뒤에는 늘  나랑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집에 돌아갔다. 


  그 손님이 어느 날은 나를 보러 왔다면서 목요일마다 자신이 일부러 이곳에 와서 술을 먹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근처 대학원생이고 박사과정 중이라고 했다. 나는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그가 싫었고 느끼한 표정은 더 싫었다. 그 사람은 손님이고 나는 호젓한 어른이니 30분 정도는 들어줄 수 있어서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반응이 그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는지(나는 뚱한 표정이다.) 그가 내게 한 말은 “여기 시급 얼마예요? 토킹바 아니에요?”였다. 나는 기분이 나빠야 하는 게 맞는데,  크게 기분 나쁘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놀라웠다. 살면서 그런 일이 익숙해 진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칵테일 바에 다시 손님이 없어졌다. 그러다 사장님이 가게를 접고 조금 쉬었다가 막걸리 집으로 바꿔야겠다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렇게 칵테일 바를 그만뒀다. 다들 잘 지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