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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MZ Jul 30. 2022

날마다 파티인 집이 있다

에세이라니 (by 가득희)

날마다 파티인 집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날마다는 아니긴 하다. 월 수 금 3일간 청소 이모로 출근하니 그가 화 목 토 일요일에만 파티를 하는 것인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렇게 먹고 마시는지 알 수는 없다. 일반의 비슷한 일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임금을 받고, 내가 그 파티의 집에서 하는 일은 광란의 현장을 아무 일도 없는 듯 말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다.


 분명 밑에 깔린 돈이 썩어나가는 것이 유일한 고민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를 채용한 사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서울 시내 웬만한 곳에서 다 보이는 엄청 높고 화려한 그 아파트를 들어가려면, 나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게 구십도 각도의 공손한 경례를 하는 안내원을 지나 로비 안의 관리자가 버튼을 열어주는 메인 현관을 거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로 진입을 하려면 이제 부여받은 카드를 찍어야 하며, 그 카드가 있어야만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탈 수 있다. 몇 번의 검열을 거쳐 간신히 닿은 그 집은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아주 조용히 출입해야만 한다.


내 출근 시간 열두 시에 그가 깨어 있는 일은 거의 드물고 대부분은 취침 중이기 때문에, 그가 함께 놀아줄 사람이 필요해 고용한 비서만이 웬만한 원룸 크기의 현관을 벗어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왼편 작은 거실에서 아주 조용히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날짜가 되기 전에 미리 월급을 딱 넣어주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맛난 거 사 먹으라며 보너스를 주는 기분파 집주인은 그가 싫어하는, 정해진 몇 가지 행동만 하지 않으면 내 기준 좋은 사람이다.


 어느 날 관리실에서 점검을 나와서 벨을 눌렀을 때, 잠을 자던 남자가 뛰어나와 비서를 미친 듯이 잡는 꼴을 나는 난장판 식탁을 치우다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미친놈아 내가 벨 안 울리게 하랬지. 블라블라 블라......-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대충 한 달만 하고 도망가야겠군 생각하고 말았다. 귀때기 새파란 인간이 아무리 비서라지만 아무 일도 아닌 걸로 타인을 쥐 잡듯 잡는 꼴이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데 쯪쯪Wmw. 그저 그렇게 생각만 하고 미친 듯이 어질러진 테이블에 기함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 무슨 진짜 미친놈인가. 십 분도 안되어 둘이서 낄낄 거리며 웃고 대화를 하는 게 아닌가. 어안이 벙벙한 내가 쳐다보니 이모 놀랐냐며, 자기가 벨소리에 깨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안 들리 게 조절해놓으라고 했는데 얘가 안 해놔서 제가 짜증이 났었네요. 어쩌고 하며 얼버무리고 마는 걸 들은 후, 나는 출근할 때 그야말로 숨소리도 안 나게 조심해 주는 편이다. 받는 돈을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뭐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이거지.......



밤마다 그의 집엔 대체 누가 오는 것일까. 몇 명의 인간들이 오는 것일까. 칠십몇 평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들어진 전망의 거실은 일 년 열두 달 암막 커튼이 쳐져 있다. 전에 한 번 집이 전망이 정말 좋네요 했더니 저는 전망 같은 거에 1도 관심 없어서요.라는 성의 없는 답변을 해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번 달 관리비 삼백 오십 나왔는데 이 정도면 적게 나온 거 아닌가요 이모라는 말을 진짜 궁금해서 묻는다는 표정을 지어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날은 혼자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열 켤레도 넘는 슬리퍼가 다 튀어나와 난장판이 벌어져 있는데, 우리 집 전체보다 큰 그의 다이닝 룸을 치워주면서 나는 내 전화기에는 아예 깔려 있지도 않은 배달앱에서 어떤 종류의 음식들을 배달할 수 있는지 통달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주일에 소주병을 팔아 만원을 벌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몇 번 찍어 먹고는 내팽개쳐 놓은 케이크를 다시 박스에 넣어 집에 가져가 애들을 주기도 했다. 애들이 캠프를 가고 없었던 날은 손도 안 댄 케이크를 버리기가 아까워 홍당무 앱에 무료 나눔을 하기도 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만난 나눔을 받을 분은 오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 꿀꿀했는데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 너무 기쁘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 대단히 비싼 아파트라 음식물 처리기가 집 안에 있어 주입구를 열어 음식물쓰레기로 흘려버리면 그만이지만 케이크는 특성상 처리하기도 골치 아파서 말이다.



대통령 선거날이 목요일이었던가. 금요일에 출근을 해보니 그날은 무슨 동네잔치를 치른 후의 현장처럼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그가 원하던 사람이었나 보다. 한 병에 수십 만원 한다는 샴페인 병이 셀 수 없을 만큼 비어 있었고, 배달앱에서 시킬 수 있는 모든 음식이 싹 다 배달되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고스란히 남아 밤사이 음식물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치킨이며 족발이며, 그냥 음식물처리기에 넣을 수 없는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특별 수당인지 뭔지 모를 십만 원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오늘 특근을 해야만 하게 생겼다. 업로드된 법륜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 이어폰을 꽂고 고무장갑을 끼고, 어젯밤 따끈따끈하게 배달되었을 치킨과 족발의 뼈와 살을 바른다. 중생들은 오늘도 스님에게 각양각색의 즉문을 뱉는다. 스님은 그에 맞춰 즉답을 해주신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요, 애가 말을 안 듣고요, 마누라가 너무 짜증이 심하고요.... 결혼도 안 한 중한테 그런 걸 물으면 어떡해요.ㅋ 진지하기도 가볍기도 한 질문들이 오고 가던 중, 젊은 남자 한 명이 손을 들고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스님, 요즘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데, 기후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스님이 -기후 위기를 해결합시다.- 말로 외쳐서 해결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려면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도 안 해야겠지요. 버스 타고 승용차 타고 이렇게 모이고, 강당에 전기도 쓰고 이게 다 환경을 해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이 걱정거리 좀 없어져서 즉문즉설 이런 것도 덜 하면 그게 다 기후 해결하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들 욕심 내지 말고 좀 내려놓고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하신다. 아이고 스님. 우리가 덜 욕심부리고 마음을 평화롭게 살면 뭐 합니까. 이 부모가 강남에 건물 몇 채는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한 이 인간이 이렇게 미친 듯이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데요. 스니임.......



이번 달도 그는 5일이나 빨리 월급을 넣어놓고 자신이 싱가포르로 휴가를 가며 내게도 일주일 놀러 가라며 30 만원이라는 큰돈을 보너스로 내민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다. 기후는... 음 비겁한 저는 묵언토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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