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의 엄마는 네 평정도의 한복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고운 색상의 한복천에 둘러싸인 엄마는 그것들과 원래 하나인 듯 잘 어울렸다. 원단을 자르고, 재봉틀질 혹은 손바느질을 했다. 엄마는 가끔 나를 피팅모델 삼아 옷을 입혀놓고 손을 보기도 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지만 완성된 옷이 흡족할 때는 엄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한복점은 내 방과 붙어있었고, 중간에 창문이 하나 있었다. 엄마와 손님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들렸다. 손님들은 주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와 부모들이었다. 엄마는 광장시장 원단가게에서 받아 온 카탈로그를 손님에게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도록 했다. 원단을 결정한 후, 줄자로 신체 치수를 쟀다. 한복에 맞춰 제작하는 가방과 노리개 등 장식품은 서비스로 드렸다. 엄마는 손님들에게는 참 친절했다.
가끔 큰소리가 날 때가 있었다. 완성된 옷이 손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다. 옷이 사진과 다르다며 트집을 잡기도 했고, 한복은 양장처럼 몸에 딱 맞는 옷이 아님에도 들뜨네 어쩌네 하면서 다시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지인의 소개로 오거나 이웃에서 왔기 때문에 엄마는 같이 싸우기보다는 손해 보는 쪽을 택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손님의 말이 들리면 나는 화가 났다. 일에만 매달리는 엄마가 미웠지만, 엄마의 한복은 얄미울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몇 날며칠 엄마의 손길과 눈빛을 받으며 완성된 그것들은 누군가의 가장 행복한 날을 빛내줄 것이었다. 그것들은 우리의 밥이 되고 책이 되어 주었지만, 반면 우리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건 그들이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이런저런 일들로 화가 난 엄마가 아빠 욕을 하는 소리도 창문을 통해 고스란히 들려왔다. 갈려면 다 데려가지 혼자만 편하게 죽었다고, 아주 나쁜 새끼라고, 그렇게 욕을 했다.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엄마가 문구점에 놀러 나간 날이었다. 한복점에 놓인 전화기로 친구랑 통화를 하며 무심코 서랍장을 하나 열었다. 서랍 안에 다이어리 한 권이 놓여있었다. 다이어리를 펼쳐 보았다. 한복점에 들어온 돈, 원단값 등으로 나간 돈이 얼마인지 적혀있었다.
몇 장을 더 넘겼다. 거기에는 엄마의 일기가 적혀있었다. 그렇게 아빠를 욕했던 엄마의 일기에는 아빠가 그립다고 적혀 있었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고 외로워서 따라 죽고 싶다고 적혀있었다. 엄마는 독한 사람이라 아빠를 따라 죽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단지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져서 내내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집안에 아빠의 흔적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우리는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빠는 원래 없던 사람 같았다. 아빠는 우리의 현실이 괴로울 때 끄적이는 일기 속에서만 존재했다.
엄마의 일기를 봤다고 해서, 엄마의 약한 모습을 봤다고 해서 엄마가 편해지지는 않았다. 엄마가 칼을 들이민 것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닫혀 버렸다. 나는 확신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 무렵 이모가 결혼을 했다. 이모는 말이 잘 통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모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