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한복점에는 손님만 오는 건 아니었다. 한복을 만드는 젊고 고운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할 일 없는 아줌마들이 한복점에 놀러 와서 호구조사를 하기도 했다. 엄마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내 방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말들을 들었다. 쫓아낼 수는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더 바쁘게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옷을 맞추지도 않을 거면서 찾아오는 남자가 있었다. 한복값을 물어보거나 어떤 스타일이 유행인지 등을 묻고 갔다. 그 남자는 밖에 서서 쇼윈도를 보기도 했다.
엄마는 밤 아홉 시쯤 한복점 셔터를 내렸는데, 바쁜 날은 그 일을 나한테 시켰다. 엄마는 밖에서 누가 보는 것 같아 무섭다며 빨리 닫아 달라고 했다. 정말 귀찮았다. 쓱 내리고 자물쇠만 잠그면 되는 그 일이 그렇게나 힘들었다. 엄마가 소리소리 질러야 겨우 나갔다. 우아하게 앉아 한복을 만드는 엄마가 저렇게 마귀할멈 같은 걸 동네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어차피 실업계를 가야 한다면 S여상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 동안 거의 안 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1학년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성적을 다시 상위권으로 올려놨다.
엄마가 진학상담을 하러 학교에 왔다.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낡은 건물 앞 운동장에 서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하얗고 작은 여자가 서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그렇게 쫓아다녔다는 게 뻥은 아니었나 보다 싶었다.
진학상담을 하고 온 엄마와 동네에 새로 생긴 경양식집에 마주 앉아 돈가스를 먹었다. 엄마는 담임선생님이 나를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시키라고 했다고, 이 아이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도 나중에 알아서 대학을 가든지 잘할 아이라고, 걱정 말고 보내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는데 그건 뭔가 자기 확신이 필요해 되뇌는 말 같았다. 우리 담임이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건 엄마의 뜻이라는 걸 알지만, 아무 말 없이 돈가스만 먹었다.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쓸 때 담임선생님이 S여상 가서 용의 꼬리가 되느니, 그 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학교에 가서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난 선생님 말대로 했지만, 뱀의 머리가 되지는 못했다. 어딜 가나 머리가 된다는 건 꿈이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엄마가 졸면서 일하다가 재봉틀로 손가락을 박았다. 엄마는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 보다 옷감에 피가 묻은 것을 더 속상해했다. 손가락을 동여매고 계속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화가 났다. 바로 이런 거였다. 상업고등학교에 가기 싫으면서도 엄마한테 아무 말 못 했던 이유! 엄마의 삶은 한없이 처절해 보였고, 그 앞에서 내가 뭔가를 원한다는 게 너무나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꿈은 나 같은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