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들이라서 좋았니?

by 윤아람


상업고등학교는 가기 싫었지만 주산, 부기, 타자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1학년때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모두 땄다. 그리고 2학년 때부터는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놀러 다녔다. 놀아봤자 어른이 없는 친구네 집에 가서 야한 비디오 빌려다 보기, 당시 유행이었던 락카페 가기 같은 소심한 일탈이었다.


3학년이 됐을 때, 경제적 자신감이 생긴 엄마는 내게 대학을 가라고 했다. 전문대 입시 학원을 몇 달 다녔다. 원서를 쓸 때 나는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글 써서 밥벌이 못한다며 세무회계과를 쓸 게 아니라면 대학을 가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내게 대학을 가라는 건 나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 똑똑한 사촌오빠가 세무대학을 나와 돈을 잘 버는 게 부러웠던 거다. 딸까지 대학 보내줄 형편은 못된다고 했던 때 보다 엄마가 더 원망스러웠다.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의류회사에 취업을 했다. 3년 넘게 그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지원한 과는 의상학과였는데, 엄마는 이제 와서 무슨 대학이고, 더욱이 의상학과 나와서 뭐 할 거냐며 반대했다. 그리고 그해에는 남동생이 대학을 입학해야 했다.




동생은 언니를 '큰니', 나를 '짠니'라 부르는 애교 많은 아이였다. 어느 해 겨울 방학 때 외할머니댁에 놀러 갔는데 동생이 소여물 써는 칼에 손가락을 자를 뻔했던 일, 갑자기 없어져서 온 가족이 찾아다녔는데 경찰서 책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모두 아빠가 살아계실 때 있었던 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단 하나의 기억이 있다. 동생이 열두 살 때쯤 어느 날 눈뜨고 보기 참담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왔다. 골목에서 어떤 형들이 돈을 내놓으라고 했고, 돈이 없다고 하자 마구 때렸다고 한다. 눈이 붓고 입술이 터져서 들어왔다. 속상했던 엄마는 경찰인 큰아버지한테 연락했다. 큰아버지의 반응은 '그런 애들 못 잡는다. 왜 병신같이 맞고 다니냐'였다.


엄마에게 아들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우리를 우습게 보는 큰아버지 같은 사람들 보란 듯이 잘 자라 집안을 일으켜 줬으면 싶은, 동생은 엄마에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엄마의 기대에 미칠 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엄마는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봐 주지 않았다. 알아도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 혼자 견뎌온 세월 속에서 자신의 판단은 옳아야만 했고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엄마의 말은 늘 의견이 아닌 결론이었다. 그건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삼 남매는 그렇게 딸이라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삶과 아들이라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하는 삶을 살았다. 둘 중 어느 게 더 불행한 삶이었을까?


동생아, 너는 아들이라서 좋았니?




동생에 대한 기억을 더 떠올려 보려고 눈을 감고 그때의 우리 집 거실로 갔다. 어둡고 조용하다. 열 살 즈음의 남자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아홉 살에 아빠를 잃은 내 동생은 뭘 하고 있었을까?


나는 쭉 나만 보고 있었다. 거기에 가끔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툭툭치고 들어올 뿐이었다. 내 삶에 방해가 되지 않는, 혼자 조용히 눈치만 보던 동생은 내 안중에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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