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그게 뭐라고

by 윤아람


엄마의 반대를 꺾고 의상학과에 입학했다. 엄마를 꺾은 건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 언니는 나와는 달리 할 말은 하는 편이었다.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낮에는 알바를 하고 오후에 학교를 갔다. 커피숖, 호프집 서빙, 호텔연회장, 통신사, 은행, 장애인학교 사무 보조 등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 수업은 실기과목이 많아 과제도 많았다. 과제하느라 밤을 새워도 행복했다. 예비합격으로 겨우 합격했는데, 과 차석을 해서 장학금을 받았다. 중3 때 담임선생님 말은 틀렸다. 처음에 꼬리였다고 해서 나중까지 꼬리로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일단 용이 되고 볼 일이었다. 꼬리로 남을지 머리가 될지는 그때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평생 처음 무언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하지만 그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이가 많고 피팅이 가능한 몸이 아니라는 이유로 패션 회사 디자인실에 면접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고 엄마도 보내주겠다고 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엄마가 생각을 바꿨다. 일본은 여자애들이 공부한다고 가서는 술집 여자가 돼서 돌아오는 곳이라고 누군가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지인이 운영하는 백화점 매장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백화점 신사복 매장에서 6개월을 일했다. 백화점 일은 힘들었고, 꿈은 자꾸만 생각났다.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백화점을 그만둔 뒤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닫힌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었다.


디자이너가 되어 처음에는 용돈정도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나를 엄마는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경력이 쌓이면서 이전 회사 다닐 때 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고 해외출장도 자주 다니게 되자 엄마가 나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자랑이 된 내가 자랑스러웠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엄마와는 늘 거리감이 있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언니와 상의하고 도움을 받았다. 엄마가 딸에게 해줘야 할 많은 부분을 언니가 해줬다. 안 좋은 일은 엄마 모르게 숨겼다. 엄마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 만큼 나도 엄마를 믿지 못했다.


그때 내가 엄마에게 바란 건 단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뿐이었다. 그땐 몰랐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깟 말 한마디가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빠 대신 힘들게 일을 한 엄마, 엄마 대신 동생들을 챙겨야 했던 언니, 엄마의 희망으로 아들노릇 하기 벅찼을 동생. 나는 어떤 특권도, 의무도 주어지지 않은 둘째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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