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아빠의 고향 친구가 술을 마시고 우리 집을 찾아와 아이처럼 울면서 내게 말했다.
"아무 걱정하지 마. 아저씨가 아빠 역할 해줄게.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술에 취한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집에 안 가려고 해서 억지로 끌고 나갔는데 길바닥에 앉아 울어서 너무 창피했다. 다행히 그 후로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 역할을 해 줄 사람이 필요치 않았다. 무덤을 파헤쳐 아빠를 살려 데려와 줄 게 아니라면 내게 그 어떤 아빠도 필요치 않았다. 다행히 엄마도 우리에게 아빠가 필요할 거란 이유로 남자를 데려오는 일은 없었다.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건 아빠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더 지났을 때였다. 엄마의 외출이 잦아졌고 표정이 밝아졌다. 엄마는 모든 일에 그랬듯이 우리의 의견을 묻지 않았지만, 난 엄마의 연애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었다. 집에만 있던 엄마가 나가는 게 좋았다. 엄마가 있을 때의 집보다 없을 때의 집이 더 편안했으니까.
얼마 뒤에 엄마는 그 분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대신, 함께 살지 않을 것이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또한 통보였다. 그분은 키가 크고 마른 듯한 모습이 아빠와 비슷했다. 매우 선한 분이었고 무려 연하였다. 전 부인과 이혼을 한 뒤 내동생보다 몇 살 어린 남매와 살고 있었다. 아이들도 선했다. 식당을 빌려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그 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생활했고 그분이 우리 집으로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엄마의 결혼으로 내게 생긴 최대 고민은 '이분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였다. 난 엄마의 결혼을 찬성하는 편이었지만, 그분을 아버지로 받아들일 만큼 넉넉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분은 좋은 분이고, 깐깐한 우리 엄마 비위를 맞춰주는 고마운 분이다. 하지만 평생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아버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아저씨'라고 했다고 엄마가 화를 냈다. 언니와 나는 호칭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명절 때만 만났고 딱히 할 말도 없어서 눈이 마주쳤을 때 가벼운 대화를 하는 정도로 지냈다.
"당신이 뭔데 여기 있어? 나가."
내 결혼식 날이었다. 신부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찰 큰아버지가 큰 소리를 내는 게 들렸다. 혼주석에 엄마와 앉으려던 그분을 큰아버지가 내쫓았다. 그분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나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분이 아니라 큰아버지 당신이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엉덩이를 들썩였을 뿐 일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엄마, 남편, 그분과 넷이 술을 한잔 했다. 약간 취기가 오른 내가 그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 아시죠? 엄마 잘 부탁드려요."
술을 마셨을 때의 나는 평소보다 많이 해맑은 편이다.
아버지라고 부를 용기는 끝내 생기지 않았다. 내게 아이가 생겼을 때 적당한 호칭이 생각났다. '할아버지'였다. 엄마와 이야기를 할 때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썼고, 직접 이야기를 할 때는 여전히 호칭을 쓰지 않았다. 그냥 눈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착한 내 동생은 그분을 '아빠'라고 부르고, 역시 착한 그분의 딸은 우리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 애들의 용기가 부럽다.
엄마는 재혼을 한 뒤에도 아빠 제사상을 차렸다. 최근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산소를 찾아간다. 떼를 새로 입히기도 하고 보기 싫은 나뭇가지들을 처내기도 한다. 삼 남매가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 가듯 아빠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