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털털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정보다 시댁이 더 편했다. 둘째를 낳았을 때, 친정엄마도 한번 해준다고 한 적 없는 산후조리를 시어머니께서 해준다고 하셨다. 난 흔쾌히 시댁으로 갔다. 내손으로 미역국과 무나물뿐인 밥을 차려먹고 아기옷 손빨래를 하게 될 줄은 모르고 말이다. 그제야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겠다는 말 뒤에 붙였던 한마디가 떠올랐다.
"산후조리원을 뭐 하러 가니? 돈 아깝게."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다는 헛꿈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좋아해 봤자 남의 엄마인 것을.
나는 시시때때로 화가 났다. 육아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나만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외딴섬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좌절감,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만 바라보는 연약한 생명들을 내가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두려웠다. 두려움은 아이들을 할퀴어댔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또 나를 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 서툴러 보이는 내게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넌 엄마가 돼서 그런 것도 못하냐?"
"난 뭐 엄마로 태어났냐?"
그랬다. 나도, 우리 엄마도 엄마로 태어나지 않았다. 엄마라는 존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나의 화는 점차 작아졌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여자로 보기 시작한 건 내 아들이 아홉 살이 됐을 때였다. 그 나이에 아빠를 잃은 동생이 보였고,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세 아이와 남겨진 한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의 젊음이 안타까웠다. 나 보다 어린 여자를 탓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네가 딸인 줄 알았다면 낳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내게 그 말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낳고 속상해하는 엄마에게 아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속상해할 것 없어. 이 아이는 커서 아들 몫 할 거야. 두고 봐."
아빠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집안 아들들만 쓰는 돌림자 '용'이 내 이름 가운데 들어갔다. 나는 내 이름이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예쁘지 않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내 이름이 좋아졌다.
한때는 아빠의 바람대로 아들 몫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내가 자식 낳고 살다 보니 '아들 몫'이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은 엄마밥이 먹고 싶을 때 엄마를 찾아간다. 대충 키운 딸들은 맛집을 찾아 모시고 간다. 엄마는 말로는 아들 소용없다 하면서도 아들 생일이면 밥을 해놓고 기다린다. 그 아들이 섭섭하게 하면 큰딸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하곤 한다. 언니는 엄마 하소연도 다 들어주고, 필요한 것도 잘 사 드린다. 언니에게 딸 몫으로는 의무만이 주어진 것 같다.
내가 아들이 아닌 것을 엄마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엄마는 공부 못하는 아들 대학 보낸다고 과외시키고, 운전면허 따니까 차 사주고, 결혼할 때는 아파트를 사줬다. 나까지 아들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아빠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아들 몫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딸이 둘이라서 엄마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똑똑히 알려드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