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남편이 출장 간 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잠을 잤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있는데 엄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너희들 어렸을 때는 어디 가서 아빠 없다고 무시당할까 봐 겁나서 엄하게만 했었다. 그땐 그래야 되는 줄 알았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나서 살며시 돌아누웠다. 엄마가 우리에게 던진 차가운 말들은 엄마에게도 상처를 주었구나. 마음 한편이 말랑말랑 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랑 편안하게 웃기만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언니와 나)는 세상 까다로운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엄마 마음에 드는 맛집, 엄마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찾기가 힘들다. 돈 쓰고 엄마의 불평을 듣고 나면 이제 다시는 하지 말자 하다가도 얼마 후에 언니나 내가 쓱-'여기 어때? 엄마랑 가자'라는 문자를 날리곤 한다.
난 여전히 위로가 필요한 일엔 엄마보다는 언니를 찾는다. 엄마는 나이 들수록 아이 같아져서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작은 일에도 섭섭해한다. 엄마를 떠올리면 '따뜻함' 보다는 '감사함'이란 단어가 떠오른다는 게 늘 아쉽다. 하지만 따뜻함을 주는 엄마였다면 그 세월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유 없이 우울했던 어느 날, 그 우울의 원인일 거라 생각되는 시간들을 기억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돼보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열다섯 살의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정도 떠올랐고, 새로운 감정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의 기억이 나와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고 놀랐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전부라 믿고 있었다. 어쩌면, 늘 화가 나 있던 엄마는 나만 보면 화가 났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기억은 틀릴 수도 있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렇다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난 지금 그 부분이 가장 고맙다. 엄마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와 같은 원망의 말을 하지 않고, 우리가 엄마의 노후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몸을 잘 가꾸고 챙기신다. 중년의 자식 입장에선 최고의 엄마다.
얼마 전에 친구가 카톡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그건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내가 원하는 걸 못하게 해서 그런 것 같아.
지금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 엄마 덕분인 것 같다.
지금까지 열한 편의 글을 발행했다. 글을 써놓고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읽었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글을 발행했다. 발행된 글들은 이제 더 이상 내 상처가 아닌 경험이고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홀로 외롭게 앉아 한복을 만드는 엄마 곁에서 조잘조잘 수다 떠는 애교 많은 딸이 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 글에 썼던 이 문장을 다시 읽을 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가 발랄한 열다섯 살 아이가 돼야겠어. 어떻게? 소설을 쓰자!'
꿈을 갖지 못했던 열다섯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꿈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