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달래는 꽃, 진달래

by 윤아람


아빠는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는 진단을 받고 집에 누워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고 싶었던 엄마는 낯선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엄마와 그 사람들이 아빠 곁에 둘러앉아 '남녀호랑개교'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내게도 따라 하라고 했다. 나는 무서웠다. 울먹이는 나를 보고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빠의 눈빛이 슬퍼 보였다.


누워있는 아빠 옆에서 놀았다. 라디오 스위치를 피아노 건반인 양 누르며 노래를 불렀다.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아빠는 '피아노 사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아니'라고 대답했다.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는 나를 엄마는 주산학원에 보냈다. 나는 더 이상 조르지 않았고 피아노 치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만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아픈 아빠 앞에서 들키면 안 되는 마음을 들켜버렸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다.

"피아노 사줄까?"


아빠가 아파 누워있던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찾아와 통곡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을 온통 우리 집에 쏟아내고 돌아갔다. 도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났다. 나를 두고 가버린 아빠에 대해, 내게서 아빠를 데려간 하늘에 대해, 나보다 슬플 리 없는데도 서럽게 울어대는 사람들에 대해.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넌 잠이 오냐?"

이모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잠이 쏟아졌다.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잠이 쏟아졌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믿었던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을 보자 눈물이 났다. 친구들도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서 있다가 누군가 말했다.

"우리 그만 울고 놀자."

친구들과 집 앞 공터에서 한참을 뛰었다.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난 잊고 있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빠가 묻힐 자리 앞에 진달래꽃이 피어있었다. 온통 회색인 산과 사람들 사이에 선명한 분홍빛 진달래꽃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관에 흙을 덮기 전에 엎드려 곡을 하라고 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 땅을 쳐다보고 우는 척을 했다. 우는 척을 하면 진짜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끝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조용한 밤, 나는 밤새도록 홀로 두고 온 아빠 곁 진달래꽃 앞에 서 있었다. 소리 없이 베개가 젖었다. 열세 살의 어느 봄날이었다.




내 안에 아이는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친 열다섯 살이 아니라 아빠를 묻고 돌아온 그날 밤부터 쭉 울고 있었다는 걸 글을 쓰며 깨달았다. 나는 누가 괴롭혀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했다.

'절대 울지 않을 거야, 나는 아빠를 땅에 묻을 때도 울지 않은 독한 년이니까'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슬픔은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늘 혼자 조용히 울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아빠 생각이 나 슬프게만 보였던 진달래, 그 꽃말이 '사랑의 기쁨'이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아빠의 무덤 앞에 진달래가 피어있었던 건 기뻤던 일만 기억해 달라는 아빠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진달래는 아빠가 떠난 계절마다 피어 슬퍼하는 나를 달래고 있었던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달래꽃이 피었다. 날마다 다니는 산책길을 아빠와 손을 잡고 걸었다. 아빠가 다시 물었다.

'피아노 사 줄까?'

'좋아요. 우리 다시 만나는 날 멋진 연주 들려 드릴게요.'

'너 피아노 잘 못 치잖아?'

'지금부터 연습하면 30년쯤 후에는 잘 치겠죠. 신청곡 뭐든 말만 해요~'

아빠와의 피아노 연주회를 상상해 본다. 진달래가 오래도록 피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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