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때문이야

by 윤아람


내 나이 스물한 살 겨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가스폭발사고 소식을 들었다.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난 5호선 애오개역은 우리 집에서 5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제발 받아라 좀. 받지 않는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말했다.

"엄마랑 통화했어. 우리 집은 피해 없고, 엄마 전화 안 받으면 아마 문방구에 가 있을 거야."

퇴근하고 동네에 들어서니 안개가 낀 듯 뿌연 연기가 자욱했다. 어제까지 봤던 약국이 있던 건물이 뼈대만 남은 게 보였다. 얼른 고개를 돌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게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내 나이 서른한 살 봄, 엄마는 15년 넘게 했던 한복점을 정리했다. 우리가 이사하고 얼마 뒤에 그곳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영원히 사라졌다. 경기도에 4층짜리 다가구주택을 구입한 엄마는 이제 일을 하지 않아도 월세만으로 생활이 가능하게 됐다. 난 출근시간이 2시간이나 걸렸지만 엄마는 결혼 안 한 딸을 독립시킬 마음은 없었다.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지만 다시 취직할 때까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를 견디느니 아침마다 홀로 거리를 헤매는 게 나았다.


다시 일을 하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가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엄마가 응급실에 누워 있는데 멀쩡해 보였다.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너 울었어?"

"안 울었어. 왜 쓰러졌대?"

이석증이었다. 귀안에 있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돌 같은 게 빠져서 중심을 못 잡고 어지러운 증상이라고 했다. 그 돌이 제자리를 잡아 들어가면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엄마는 여전히 깐깐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 정도쯤은 무시할 만큼 난 자라 있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은 잊혔고, 엄마는 힘들게 바느질하며 우리 삼 남매를 키운 대단한 사람, 고마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고 그렇게 생각했다. 난 엄마의 은혜에 보답하는 착한 딸이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 그날은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다. 평소보다 늦게 하원하는 아이가 보고 싶어 오후 내내 기다렸다. 아이를 반갑게 맞아 집에 들어와 손을 씻기는데 이유 없이 계속 짜증을 냈다. 참고 안아주다가 순간적으로 '우리 엄마는 나를 한 번도 참아준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참아야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솟구쳤다. 아이를 던져버렸다. 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 시작됐다. 봉인이 풀린 듯 쏟아지는 오래된 아픈 기억들.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그 옛날 엄마처럼 차가워졌다. 엄마에게 들었던 말들로 아이들을 할퀴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엄마 탓을 했다.

'이건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날 이렇게 키운 거야.'

난 그렇게 다시 열다섯 살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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