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고생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한복을 만드느라 밤을 새우고 밥을 제대로 못 먹어도 하나도 안쓰럽지 않았다. 늘 화가 나있고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는 엄마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숨이 막힐 뿐이었다.
내 눈엔 나만 보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라 생각했다. 엄마랑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조차 잘 안 했다. 엄마가 뭘 시켜도 손하나 까딱 안 하고 누워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가슴속에 쌓여있던 화가 폭발했다. 엄마가 부엌칼을 집어 들고 같이 죽자고 했다. 일기장에 수도 없이 죽고 싶다는 말을 썼지만 눈앞에 칼을 보자 무서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울면서 엄마 팔을 잡았다. 엄마는 힘 없이 칼을 내려놓고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엄마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한 번도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활화산 같았고 학교는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웃을 일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일 때 나는 여느 열다섯 살 계집아이처럼 웃고 다녔다.
중2 때 내 첫 짝꿍은 성희였다. 성희네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성희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는 목욕탕에서 일했다. 오빠가 한 명 있는데 성희를 샌드백 취급한다고 했다. 우리는 '달려라 하니'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만화책을 자주 빌려다 봤다. 어느 날 성희가 옷장 안에서 소주 한 병과 담배를 꺼냈다. 같이 간 친구와 성희는 소주를 한 모금씩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얼마 뒤부터 성희는 학교에서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과 어울렸고, 그 애들과 함께 가출을 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성희는 자퇴를 했고, 나는 효진이를 비롯한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해졌다. 집까지 두세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하교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까르르 웃어댔다. 헤어져야 할 길목 떡볶이집에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다가, 그래도 할 이야기가 남아 누군가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우리는 효진이네 집에서 자주 모였다. 효진이 부모님은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고 막노동을 하셨다. 두 분의 옷차림은 물론 효진이가 입고 다니던 옷도 매우 촌스러웠다. 효진이는 부모님을 부끄러워하고 무시했지만, 나는 순박해 보이는 효진이 엄마가 좋았다.
시연이는 딸이 다섯인 집에 막내였다. 시연이의 아빠는 엄마와 이혼하지 않은 채로 다른 여자랑 살고 있었다. 서른 살이 넘은 큰언니가 결혼하지 않고 가족들을 돌보고 있었다. 시연이에게는 언니들과 형부가 부모였다.
민희의 부모님은 식당을 했다. 두 분은 자주 싸웠다. 민희는 가끔 물건을 던지며 싸우는 부모님을 피해 한밤중에 우리 집으로 오기도 했다. 민희는 우리 엄마가 예쁘고 친절하다며 좋아했다.
은수네는 구멍가게를 했다. 은수네 집에 가끔 놀러 갔다. 은수 엄마는 늘 가게를 지키고 있었고, 아빠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외출에서 돌아오시곤 했다. 은수 아빠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분이었다. 우리를 보면 인자하게 웃으셔서 가족을 때릴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은수는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내가 친구들을 보면서 가장 위안받은 것은 친구들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만 불행한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엄마의 한복점 맞은편에는 슈퍼마켓과 문구점이 있었다. 내 또래 아이가 있는 아줌마들이 주인이었다. 가끔 한복점에 손님이 왔는데 엄마가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문구점으로 달려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아줌마들과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여느 동네 아줌마 같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