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시고 1년 뒤에 이사 간 집은 길 쪽으로 작은 가게가 2개 딸린 낡은 단독주택이었다. 가게 하나는 세를 주고, 하나는 엄마가 한복점을 했다. 가게 뒤쪽으로 연결된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넓었다. 엄마는 아빠 보다 돈을 잘 벌었다. 집에는 전에 없던 소파와 식탁, 오디오가 생겼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집은 늘 어둡고 조용하고, 추웠다.
중학교를 입학했다. 입학할 때 본 배치고사에서 한 문제를 틀렸는데 전교 1등이라고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그건 운이었다. 그 후로는 반에서 3등이 제일 잘한 거였다.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다.
"엄마 없는 사람 손 들어 봐"
"아빠 없는 사람 손 들어 봐"
아빠가 없다는 건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학교에서 한 명 받을 수 있는 교육청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추천했으니 서류를 들고 교육청을 가라고 했다. 가기 싫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난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장학금을 주는 것은 내가 아빠 없는 불쌍한 아이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고 서 있다가 얼른 가라며 손짓을 했다. 무섭게만 보였던 담임이 아빠 미소를 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음악 담당이었고 미혼이었다. 여중에 총각선생이면 인기가 많을 만도 한데, 다혈질에 기합을 하도 많이 줘서 다들 무서워했다.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어색한 얼굴로 교단에 올라 곧 결혼을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반에 자신의 약혼자를 닮은 애가 있는데 그게 나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나를 '장학금 받는 애'로 만들어줬나 보다.
내가 받은 그 장학금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중간고사가 끝나고 영어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여기 장학금 받는 애 있지? 누구니? 너 몇 점 받았어?"
"92점이요."
"장학금 받는 애 점수가 그게 뭐니? 다른 건 더 잘 봤겠지?"
그 후로 영어 선생님은 내가 수업시간에 조금만 딴짓을 해도 장학금 운운하며 교실이 떠나가게 야단을 쳤다. 장학금을 받는 게 창피했다.
2학년이 됐다. 깐깐한 말투의 학년부장이 담임이었다. 그녀는 영어선생보다 더 심하게 나를 못마땅해했는데, 교실에서 '왜 너 같은 애한테 장학금을 주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장학금을 반납하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잘해 대학을 보내달라고 할까 봐 걱정인 듯했고, 학교에서는 장학금 받는 죄인 취급을 당했다. 공부가 재밌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었다.
그렇게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담임선생님은 매우 친절한 말투로 성적 때문에 장학금을 못 받게 됐다는 말을 아이들이 다 있는 교실 안에서 했다. 성적이 나쁘다는 것에 처음으로 창피함을 느꼈다. 2년간 날 괴롭혔던 '장학금 받는 애'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났지만 시원하다기보다 씁쓸했다.
그즈음에 엄마도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우리는 각자의 슬픔을 가슴에 품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화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