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딸인 줄 알았으면 낳지 않았을 거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엄마.
'딸은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아들이 최고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던 외할머니.
나는 뭐든지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딸이라서 차별하지 않고, 나를 완전히 사랑해 준 아빠가 세상을 떠난 열세 살 이전까지는 그랬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내 삶에는 한계가 정해졌다. 딸이라서 해야 하는 일, 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
중학교에 입학할 때 어쩌다 보니 전교 1등을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에 대해 엄마가 좋아했다거나 칭찬받은 기억이 없다. 엄마는 내게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딸까지 대학 보내줄 형편은 못된다, 인문계 나와서 대학 못 가면 바보 된다'라는 말만 했다. 난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2학년이 되어 중간 없이 바닥을 처버린 성적표로 대답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매우 무기력하게 보냈다. 안 태어나도 괜찮았을 텐데 태어났으니 조용히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놀러 다니거나 사고를 치지도 않았다.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힘들었다. 집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집에 딸린 한복점에 앉아 한복을 만들었고,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오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엄마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엄마는 아이 셋을 키우며 혼자 살기엔 너무나 젊었다. 얼마나 막막하고 외로웠을지,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지 내가 엄마가 된 뒤에야 알 것 같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홀로 외롭게 앉아 바느질을 하는 엄마 곁에서 조잘조잘 수다 떠는 발랄한 딸이 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씩씩하게 딛고 일어서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오래된 기억들이 찾아와 날 괴롭히곤 한다. 딸이라서 안된다는 한계에 부딪쳤던 그때의 절망감이 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느낌이다.
나는 침묵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 딸이라서 안된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소리쳐야 했다. 어쩌면 나는 딸이라서 안된다는 말 뒤에 숨어 편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 탓하면서 대충 살자고 마음먹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산책길을 걸으며, 그 시절 나와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딸이라서 안된다는 말을 한 엄마가 아닌, 딸이라서 안된다는 엄마의 말뒤에 숨어버린 비겁했던 나를 탓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해 봤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셔서 슬펐고, 주변 사람들은 엄마가 힘드시니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말만 했다. 엄마는 늘 차가웠다. 나 역시 엄마만큼이나 외로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말을 걸었다. 이제 그만 울고 네 이야기를 해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