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부터 회사에 출근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을 먹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싸온 삶은 계란이나 과일 혹은 볶음밥 정도로 점심을 해결하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점심시간을 보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치 대단한 일인 양 부풀려서 보여주는 연예인들의 소소한 일상이나 이슈들을 보면서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피로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보게 된 어느 운동 채널 운영자가 하는 말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항상 낼 수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항상 낼 수 있는 시간이라? 딱 점심시간이었다.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못하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을 활용하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알아봤다. 사무실 근처 피트니스 센터와 필라테스 센터를 알아봤지만 거리나 시간이 점심시간으로는 부족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20분 정도 사무실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남편이 단식에 관심이 생겨 책을 몇 권 샀는데 그 책을 읽어 보고 5일 단식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살면서 하루 이상 굶어 본 적이 없었고, 굶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던 내게 단식은 신세계였다. 배고픔은 하루 이틀이면 끝난다. 3일 후부터는 몸이 가볍고 심지어 기운도 난다. 단식을 하면서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산책할 만한 장소를 찾았다. 사무실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 주변 산책로와 공원이 쾌적하고 나무 그늘이 많아 걷기에 매우 좋았다. 3년을 이곳으로 출근하면서도 관심을 갖지 않아 몰랐었던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다.
산책은 단순히 걷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있었다. 5일 단식이 끝나고도 점심을 먹지 않고 산책을 계속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점심을 안 먹고 어떻게 버티냐,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하는데 내가 겪어 보니 덜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게 훨씬 편하다. 덥고 쨍한 날도, 비 오는 날도 산책을 했다.
점심시간에 밥 대신 산책을 하면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낮의 산책길에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주변을 힐끗 살핀 후 가볍게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아주 오래된 일들부터 방금 전 있었던 일들까지 제멋대로 툭툭 떠올랐다가 사라지면서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된다. 산책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해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보기도 하고 어제 못 본 꽃이 피어있으면 반가워서 사진을 찍어댄다. 단순한 산책을 너머 휴식의 시간이다.
오늘은 비가 내려서 잠깐 망설였다.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컵라면 하나 후루룩 먹고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나가보자. 산책길에서도 컵라면이 먹고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 먹자' 우산을 챙겨 나를 일으켜 세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덥고 쨍한 날보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매일 걷는 왕복 50분 거리의 산책길을 걷는다. 산책길에는 까치와 참새가 많다.
"까치야, 안녕" "참새야, 안녕" 어제도 봤던 그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본다. 언제부턴가 이 길을 '나의 산책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걷고 있다. 난 이 땅 주인도 아니고 이 동네 주민도 아니지만, 이 길을 걷고 있는 이 순간만은 이 길은 나의 길이 된다.
나무가 우거진 산책길에는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 비바람을 못 견디고 떨어진 가는 나뭇가지와 나뭇잎들... 언젠가 시사다큐에서 본 내용 중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고통받는 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그 가난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땅에 뿌리를 박은 기둥과 그 기둥에서 뻗어 난 굵은 나뭇가지들은 끄덕 없는데 얇은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은 비바람을 못 견디고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살면서 비바람을 겪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거센 비바람에도 바닥에 떨어져 뒹굴지 않으려면 기둥이 되거나, 비바람에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굵은 가지가 되어야 한다.
'금수저로 태어나지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못한 사람이 나무 기둥이 되는 방법은 뭘까?'
얼마 전 막내딸과 함께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를 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꿈꾸던 것들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내 꿈을 찾아줄 오즈의 마법사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답은 늘 내 안에 있다. 깨닫지 못했을 뿐. 나는 날마다 산책길을 걸으며 나에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엄마의 꿈을 궁금해하는 아홉 살 막내딸에게 답을 해주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