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Jul 25. 2022

마흔아홉의 성장통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


"학원 끝났어? 저녁 먹고 올 거니?"

"네"

"너무 늦지 말고 여덟 시까지는 들어와~"

"넹"

고1 아들과 나의 카톡 내용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전화는 잘 안 받고 카톡을 하면 '네'혹은 '넹'이라는 짧은 대답만 온다. 가끔 용돈을 보내거나,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하트 이모티콘 하나씩 선심 쓰듯 보내주는 정도다.


지금은 이렇게 말이 없는 아들이지만 한때는 굉장한 수다쟁이였다. 두 살 터울인 동생과 내 귀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날이 많았다.

"나도 말 좀 하자"

"싫어. 내가 먼저 말할 거야."

내 양쪽 귀에 대고 쉴 틈 없이 조잘조잘 말들을 쏟아내는 아이들이 너무 피곤했다. 그때는 어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혹사당하는 두 귀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엄마"

"왜?"

"사랑해."

감정표현이 서툰 나와 다르게 무뜬금 사랑 표현을 하는가 하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답장도 없는 러브레터를 수도 없이 보내줬던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고 얼굴 마주보고 앉아있기도 힘들어 졌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앞에 앉았다. 이제 막 시작된 방학을 잘 보내기 바라는 마음에 대화를 시도했다. 어제는 학원에 다녀와서 느긋하게 핸드폰만 몇 시간을 보다가 잠을 자는 모습이 거슬려 학원에서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공부를 좀 하고 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알았다고 기분 좋게 대답을 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또 잔소리를 했다.

"공부를 몇 시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학 동안 좋은 습관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서 길게 말고 10분 정도 영어단어를 몇 개 외운다든지, 수학 문제를 푼다든지 하는 루틴을 만드는 거야."

아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엄마, 저 공부하고 있는데 왜 자꾸 공부 얘기만 해요? 학원 갔다 와서 공부 더 하고 아침에도 하라는 건 저더러 공부만 하라는 얘기예요?"

"네가 공부를 한다고? 너 뭐하나 보면 항상 핸드폰 보고 있고 공부 좀 하라고 하면 공부는 이제부터 할 거다, 조금 전까지 했었다 그런 식이잖아."

아들은 언짢은 표정으로 밥 숟가락만 마구마구 욱여넣고 있었다. 더 이상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

"내가 맨날 밥 해먹이고 학원비 내주면서 이 정도 말도 못 하니?"

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화가 더욱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한 시간씩 샤워를 하고 잠깐 잔다면서 늘어지게 자고 있어도 참았고, 공부 안 해서 성적 안 나온 걸 시험 문제가 어려웠다는 식으로 소리 높여 변명하는 것도 참아줬다. 이제 자신이 뭐가 부족한지 알았고 2학기 때는 잘해보겠다 했으니 믿어보자 생각했었다. 이 놈이 이제 컸다고 날 무시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너무 답답해서 "아~"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 딸들이 "엄마 왜 그래?" 물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몇 분간 심호흡을 하고 명상을 하려고 동영상을 틀었다. 귀에 들리지 않았다.


핸드폰이 날 감시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의 상황을 다 보고 있는 듯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라는 책을 소개하는 박재연 작가의 영상이 내가 틀어놓은 명상 영상 아래에 보였다. 20여분 남짓 그 영상을 보면서 나의 화법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아들과 다시 대화해 봐야겠다고 마음을 풀고 나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는 내 뒤로 아들이 다가왔다.

"엄마 저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돼요?"

"어 그래"

"엄마, 저는 엄마가 제가 항상 변명하고 핸드폰만 본다고 따지듯 말씀하셔서 조금 기분이 나빴던 것뿐이에요. 엄마 죄송해요. 사랑해요."

그러면서 뒤에서 나를 안았다.

"엄마도 화가 난 건 아니고 네가 방학을 잘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 걱정돼서 말을 하려다 보니 그랬어. 미안해. 엄마도 사랑해."

눈물이 나서 겨우겨우 말을 마쳤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부끄러움. 나는 열일곱 살 아들이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도록 놔둔 못난 어미다. 설거지하는 내내 아이들 모르게 계속 눈물을 쏟았다.


열일곱 살 때의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해주는 걸 섭섭해하기만 했지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계획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아들의 나이 때에 어땠는지는 잊고, 아들의 부족한 면만을 보려고 했었다. 엄마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진심을 전할 정도의 용기가 있는 아이라면 내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대화법을 새로 배우는 중이다.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그저 긍정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마음을 다시 다잡고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말하는 긍정적인 대화법을 배우고자 한다. 같은 마음이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를 웃게 할 수도 울게 할 수도 있으니까.


어디선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대단한 자기 계발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보다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낀다. 마흔아홉의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


이전 07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