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 일찍 나가서 한잔 할까요?"
어둑어둑한 창밖을 보며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내게 물었다.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동료와 나 단 둘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부슬부슬 비도 내리고 한잔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같이 근무한 지 4년이나 되었는데 둘이 따로 만남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나도 흔쾌히 응했다.
"좋아요. 애들은 치킨 시켜주면 돼요. 제가 일찍 가는 것보다 더 좋아할 거예요."
우린 그렇게 퇴근시간 1시간 전에 땡땡이를 치고 사무실 근처 횟집으로 향했다. 마늘을 잔뜩 넣은 쌈장에 회를 찍어 입안에 넣고 씹으며 소주를 한잔 곁들였다.
'와~넌 어떻게 된 애가 오랜만에 만나는데도 이렇게나 달달하냐?'
술과 멀리한 지 두어 달이 지났기 때문에 술맛이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30년 지기 답게 입안에 착착 감겼다. 그간 사적인 대화가 별로 없었던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딱 한 병만 마시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한병 반을 비우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9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집안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그냥 씻고 누웠다.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새벽 2시 45분이었다. 더 자야 할 시간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제야 생각났다. 내가 술을 멀리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를.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기가 힘든 날이 많았다.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는 음식을 먹으면 또 급격하게 혈당이 떨어지며 몸이 힘들어지는 것처럼,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서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나면 우울과 불안이라는 불편한 손님들이 찾아오곤 했고 그 기분은 며칠간 이어지기도 했다.
우울이 말했다.
"너 몇 년간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하고 연락 안 하잖아.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면 너한테 문제가 있다는 생각 안 드니? 너 정말 별로야."
불안이 말했다.
"너 같이 별로인 아이가 좋은 습관 만들고 꿈을 찾는다고? 아이들도 제대로 못 챙기고 집안꼴도 엉망인데 책을 읽고 어설픈 글을 쓴다고? 어디 열심히 발버둥 쳐봐라. 달라질 건 없을 테니."
두 시간 정도를 퍼붓는 빗소리와 함께 불편한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에 에워싸여 괴로워했다.
어렵게 다시 잠들었다가 7시쯤 일어나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여전히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어질러진 집안을 치웠다. 현관에 아무렇게나 엉켜있는 가족들의 신발을 정리했다. 방학 중인 아이들이 점심에 먹을 밥을 했다. 독서할 시간이 없어 책을 챙겨 나와 출근길 전철에서 읽었다.
점심시간에 평소처럼 산책을 했다. 오전에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파랗게 바뀌어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불편한 손님들은 이미 떠나 버리고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집안을 치울 때 떠났는지 전철에서 책을 읽을 때 떠났는지 산책을 나가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섰을 때 떠났는지 잘 모르겠다. 두 달간 명상과 책 읽기, 산책하며 혼자만의 시간 갖기, 글 쓰기 등 내 마음을 치유하고 긍정적으로 살려는 노력들을 하면서 마음에 근육이 좀 늘었나 보다. 불편한 손님들의 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나를 칭찬한다.
"와~양평해장국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해장국을 오늘은 나를 위해 샀다. 뜨끈한 해장국에 하얀 밥을 말아먹고 나니 내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워졌다.
우울하다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며
마음이 평화롭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