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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y 14. 2024

나 홀로 여행 다녀온 엄마에게 딸이 해준 예쁜 말

안녕하세요.

저는 직장을 다니며 고등부터 초등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오늘 저는 마흔아홉 평생 처음 다녀온 나 홀로 여행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딸과 함께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중 시원한 바람이 불었어요.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들 앞으로 새가 날아갔지요.

“하늘을 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딸이 말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저도 궁금했어요. 저는 ‘패러글라이딩’을 떠올렸어요.


그날 저녁,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패러글라이딩 하러 안 갈래?”
 “패러글라이딩? 꿈도 꾸지 마. 내가 아는 선배가 예전에 패러글라이딩 하다가 착지 잘못해서 뼈가 부러졌어. 위험해.”

“그럼, 나 혼자 갈게.”

“하지 마. 절대 안 돼.”   

  

저는 그때 무슨 오기였는지 남편 몰래 패러글라이딩에 대해 검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장소를 단양으로 정하고, 회사에 휴가를 냈어요. 혼자 가기는 약간 두려운 마음이 있어 언니와 친구에게 동행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모두 다음에 가자는 말을 했어요. 하지만 다음에는 못 갈 것 같았어요. 마음먹었을 때 해 보고 싶었어요.      


8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 마흔아홉 평생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 됐지요. 평소 출근하던 시간에 집에서 나와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2호선 지하철을 탔습니다. 날마다 다니는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유독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몇 분 하늘에 떠 있는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왕복 7시간을 차에서 보내는 게 잘하는 짓인가 고민했었는데, 여행은 집을 나와 어제와 다른 길로 들어선 순간, 이미 시작된 거였어요.     


동서울 터미널에서 단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편안하게 앉아 책을 펼쳤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한강의 모습에 책을 덮었어요.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 다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안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금세 2시간 30분이 지나가고, 단양역에 도착했습니다.    

 

단양역에서 제가 예약한 업체명이 적힌 봉고차를 탔습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여섯 명과 남녀 커플이 함께 차를 탔어요. 여자아이들은 별거 아닌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계속 낄낄낄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 웃음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돌며 ‘좋~~ 을 때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남녀 커플은 손을 꼭 잡고 곧 타게 될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엿들으면서도 ’좋~~ 을 때다.‘라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지요. 그리고 그 속에 조금 뻘쭘하게 홀로 앉아있는 마흔아홉 살 먹은 아줌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럼 난? 나도 분명 좋~~~ 을 때야!’    

 

봉고차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동안 올라 산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교육영상을 시청한 뒤 슈트를 입고 잠시 기다렸더니 강사님이 제 이름을 불렀어요. 강사님 앞으로 간 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오른발 왼발도 구분 못하고 헤매는 등 약간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막상 뛰어내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거든요. 아이들 생각도 났고요. 강사님이 제 슈트에 여러 가지 고리를 채웠어요.


“이거 잘 채워진 거 맞죠? 저 오래 살아야 해요.”

“아니, 즐기러 왔으면 재밌게 해달라고 해야죠. 왜 죽을 생각을 해요. 걱정 마요. 괜찮아요.”

강사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어요.

‘나 놀러 온 거잖아. 죽으러 온 거 아니잖아.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     


패러글라이더를 장착하고 강사님이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제 발이 허공에 떠 있었어요. 발아래로 남한강을 둘러싼 산과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고,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이 눈부셨지요.

‘와~ 너~~~ 무 좋다. 행복하다. 편안하다.’

두려웠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행복한 기분만이 맴돌았어요. 딸이 물었던 하늘을 나는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비행을 마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패러글라이딩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파란 하늘과 푸른 산들 사이로 형형 색색의 패러글라이더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제가 타는 것 못지않게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었습니다.     


가끔 아이들 없이 좋은 곳을 가면 아이들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혼자 보내는 그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다시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30분, 집을 나선 지 딱 열두 시간 만이었지요.


“엄마,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었어?”

딸아이가 보기에 제 기분이 많이 좋아 보였나 봐요.

“엄마 사실은 오늘 패러글라이딩 하고 왔어.”

“진짜? 엄마 정말 멋지다. 나도 나중에 어른되면 엄마처럼 살래.”

딸의 말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삶은 저만의 것이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저를 보며 자라니까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저를 더 자주 행복하게 해 줘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3월에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서 신춘편지쇼 공모전을 한다길래 글을 보냈습니다. 글 주제가 '여행'이었고, 마흔아홉 평생 처음 혼자 여행을 다녀왔던 날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얼마 전에 수상자 명단을 확인해 보니, 제 이름은 없더라고요. 글을 쓰면서 그날의 행복이 떠올라 즐거웠던 것으로 만족합니다. 올해도 한 번 다녀와야겠어요. 나 홀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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