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수능 끝나고 만나자. 나 그때까지는 꼼짝 못 해."
오랜만에 친구가 연락을 해왔는데, 나는 친구와의 만남을 두어 달 뒤로 미뤘다.
"어때? 맛있어?"
"네"
아들이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영혼 없는 대답을 해준다. 내가 앞에 앉아 무슨 말인가 하려는 걸 차단하려는 눈치다.
'짜식, 엄마가 날마다 점심 차리려고 얼마나 애쓰는데...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아들의 눈치를 살핀다. 말 한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수능 시험이 11월 14일,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원래는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는 아침에 등교했다가 바로 조퇴를 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독서실로 간다.
아이가 수능 공부를 위해 조퇴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허락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2학기가 되면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수업 내용은 수능시험과는 별개라고 하니 학교를 나와 혼자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학교를 나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남편과 셋이 며칠간 고민해 본 결과, 학교를 조퇴하고 나와 관리형 독서실을 다니기로 했다. 관리형 독서실은 공부시간과 쉬는 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이 정해져 있고 책상 앞에 캠을 켜놓고 공부를 한다.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 워치로 공부 시간을 인증해야 하고, 이 모든 걸 관리하는 사감선생님(?) 같은 분이 있다. 이쯤 되면 '관리형'이라기보다 '감시형' 독서실이 아닌가 싶다.
학교를 나오면 재밌는 공간이 많고, 제 손 안 휴대폰만 해도 볼거리가 넘쳐나니 아이가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는 걸 나도 알고 아이도 안다. 감시의 힘을 빌려서라도 모든 유혹을 차단하고 딱 넉 달(여름방학 직전부터 시작)만 집중해 보자는 마음으로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렇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독서실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방학이 끝날 때쯤, 아이가 고1인 동생한테 말했다.
"지금부터 내신 잘 챙겨. 오빠 지금 공부하는 거에 반만 하면 성적 잘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이는 이제야 후회를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아이는 얼마나 긴장될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가끔 예민하게 굴거나 내가 보기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럴 땐 아이를 하숙생처럼 대하라는 선배맘들의 조언을 떠올린다. 지금 열내고 잔소리 해봤자 관계만 나빠질 뿐이고, 너무 잘해주려고 애써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밥이나 잘 챙겨주고 나갈 때 들어올 때 웃으며 인사 정도 하는 사이로 지내라고 한다.
날마다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는 없지만, 같은 표정으로 아이를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며 마음속 잔소리는 칼질로 썰어내 버리고, 걱정과 염려는 뜨거운 불에 녹여버린다. 아이는 11월 14일이 천천히 오기를 바라겠지만, 나는 11월 15일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