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그리고 베트남
혼자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혼자인 시간을 별로 외로워하지 않고(혼자서도 할 게 많다), 여행을 좋아하니, 혼자 하는 여행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트랑 이전에 혼자 했던 여행들을 떠올려본다.
대학생 때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6개월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오기 전까지 공백 기간이 생겨 혼자서 타즈매니아 섬과 시드니를 여행했다. 돌이켜보면 ‘내게 이런 용기가?’ 싶을 만큼 용감하고 어렸다. 그 덕에 매운 맛도 여럿 봤으니. 여럿이 한 방을 쓰는 백패커스에서 외국인과 마주할 때의 긴장감, 공항가는 차편을 기사에게 직접 예매했는데 사기를 당한 것인지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 결국 뒤늦게 다시 잡은 버스에 올라타 안도와 서러움의 눈물을 흘린 일. 달리 아침을 해결할 줄 몰라 매일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찾아가 가장 저렴한 오늘의 메뉴를 먹은 일.
하지만 분명 반짝이는 시간들도 있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초원 위 소 떼를 실컷 바라보며 지나간 여행을 정리한 일, 혼자 시드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점심 먹을 곳을 찾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연주 소리를 따라간 일, 종이 지도를 펼쳐보며 길을 찾다 목적지를 발견한 반가움까지.
대학생 때의 이 경험은 후에 회사에 들어가서 다닌 나 홀로 해외 출장에서도 이어졌다. 조금은 더 능숙해졌고, 조금은 더 쉽게 지치는, 하지만 여전히 두렵고도 즐거운 두근거림으로 말이다.
이제 만 삼십 후반에 놓인 내가 나트랑을 혼자 활보한다. 관광 안내 센터에서 챙겨둔 종이 지도 대신 스마트폰의 구글맵을 보고,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과 한 방을 쓰는 백패커스 대신 나와 우리 가족만의 호텔 방이 있다. 혼자 다니느라 가게나 식당에서 말고는 말을 할 일이 없던 내가 늦은 오후 아이를 맞이하고 재잘거림에 맞장구를 친다. 심지어 새로 사귄 요가 메이트들과 때때로 커피나 식사를 즐기며 지금의 기쁨을 함께 실감하기도 한다.
함께였다가 혼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다시 만나는 그런 일상을 나트랑에서 보내고 있다. 혼자인 시간은 그야말로 내 맘대로 꾸려가는 자유롭고 알찬 시간이라면, 함께인 시간은 이야기 사이사이로 소리를 내 웃는 풍성한 시간이다. 예전의 혼자 여행 중에는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 돌아와 숙소의 방문을 열면 꾹꾹 압축되있던 외로움이 팡 하고 덮쳐왔다. 이것도 나름 귀가라면 귀가인데 아늑함이이라곤 없이 차디 찼다.
하지만 나트랑에서는 혼자 밖을 실컷 다니다 돌아오면 바쁜 아침 등교 준비가 여실히 드러나는 방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배고픔과 심심함을 수시로 채워줘야 하는 아이 곁에서 나도 한껏 에너지를 끌어올려 보게 된다. 내가 보호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하면 두려움이 덜하다.
'혼자 여행과 함께 여행 중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고 묻는다면 다른 종류의 행복감이라고 답할 것 같다. ‘서로 다른 색이 어우러져 더 행복하다’와 비슷할 것이다. 온통 빨갛거나 온통 파랗기만 한 무지개의 편을 들 수 없듯이 말이다. 홀로 또 함께 여행하는 지금의 한 달 살기가 내게 그런 무지개다.
여행이 주는 두근거림을 좋아한다. 그것이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일지라도 새로운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 여행했던 지난날들이 조금 짠한 지라도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와 함께의 조합으로 어우러지는 이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을 탐험하고 돌아와 내 사람들과 따듯한 식탁에 둘러앉는 이 시간을 말이다. 이번 나트랑 한 달 살기는 그런 면에서 내 여행의 특별한 챕터로 남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