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우리, 기다려

 

"사위, 내일 저녁에 약속 있나? 별일 없으면 집에 와서 같이 저녁 먹지." 퇴근 무렵 장인어른께 전화가 왔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연락받은 게 없다고 했다. "아빠가 인터넷으로 또 뭔가 주문했겠지." 장인어른은 인터넷으로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먹거리를 쇼핑하는 일에 재미가 들렸다. 가끔 소고기나 킹크랩, 장어 등을 주문해 놓고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아, 밥맛 좋네! 둘이서만 먹는 밥은 이런 맛이 안 나. 한집에 살면서 매일 같이 먹었으면 좋겠네."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시끌벅적 정겨운 만찬을 갖는 것이 장인어른의 낙이었다. 장인어른은 좋아하는 안주거리가 있으면 늘 소주 반 병을 반주로 마시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장인어른의 온라인 장 보기가 잦아지면 간혹 장모님의 울화통이 터질 때가 있었다. 언제나 요리하고 음식을 차리는 것은 퇴근하고 막 돌아온 장모님의 몫이었다. 또한 알뜰한 장모님은 먹는 데에 돈을 헤프게 쓰는 행위를 낭비라고 생각했다. 장인어른은 항상 특가 세일로 싸게 구매했다며 가격을 살짝 흘렸는데 시세 대비 비정상적으로 저렴해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였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퇴근하고 처가로 달려가니 메뉴는 한우 치마살과 꽃등심이었다. 고기를 구울 때는 장인어른과 항상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야만 했다. 구운 고기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고기를 굽기 위한 다툼이었다. "내가 구울게, 사위는 먹기나 해." 당신이 고기 굽기의 달인이라며 한사코 집게와 가위를 뺏기려 하지 않았다. 후레자식이 될 수 없는 나는 겨우 무기를 빼앗아 소금을 뿌리고 고기를 구웠다. 잠깐만 방심하면 집게는 어느새 장인어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실제 고기를 잘 굽기도 했으나 본심은 자신은 한 점이라도 덜 먹고 가족들에게 양보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진즉에 간파했다. 여럿이 밥을 먹을 때 산해진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음식을 향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노출시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군가의 젓가락질이 휘몰아친 다음에야 천천히 한 술 뜨는 사람도 존재했다. "우리 사위 참 마음에 들어." 소주를 들이켜던 장인어른이 생뚱맞게 나를 칭찬했다. 뒤에 이어질 말이 궁금해서 말하는 입술을 예의 주시했다. "음식 안 가리고 복스럽게 잘 먹어서." 단지 돼지처럼 잘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예쁨을 받는다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곱창이나 닭발 같은 음식은 못 먹었고 장인어른은 회 종류와 느끼한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장모님은 가리는 음식은 없었지만 양이 적었다. “사람이 밥심으로 사는데 잘 먹어야지.”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처럼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중시하는 장인어른의 기준에 나는 모범 가족이었던 것이었다. 식탐이 많은 것과 복스럽게 먹는 것은 한 끗 차이였다. 나는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전라도 해남이 고향인 장모님의 손맛은 항상 과식을 불러일으켰다. 흔한 나물 하나 무치고 된장찌개를 하나 끓여도 특출난 맛이 있었다. 왕릉의 봉우리처럼 수북하게 올려진 고봉밥은 나를 살찌웠다. 동시에 나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장인어른이 기분이 좋았는지 전에 없이 소주를 한 병이나 내리 마셨다.

  

 막 태어난 래브라도레트리버인 우리를 처가에 데려와 키운 지 1년이 지났다. 아내는 천방지축 개춘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훈련을 시켰다. 온종일 광분하여 날뛰는 폭발력과 자유분방함에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의외로 손, 앉아, 엎드려, 기다려 등의 훈련은 쉽게 이루어졌다. 비결은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식탐이었다. 마치 먹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온통 먹을 것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도 길에 무언가 떨어져 있으면 일단 입에 집어넣고 보는 바람에 골치가 아팠다. 하나의 동작을 지시한 후 완수하면 간식을 주는 방식으로 교육했다. 처음에는 훈련을 인지하지 못하고 간식만 먹고 튀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대견스럽게도 척척 동작을 해냈다. 간식만 있다면 자동차도 운전하고 청소기도 돌릴 기세였다. 가장 흥미로운 동작은 바로 '기다려'였다. 밥그릇에 간식을 올려놓고 '기다려'를 시키면 앉은 상태에서 사인이 내려질 때까지 침을 질질 흘리며 버텼다. 침을 한 바가지 흘리는 바람에 애처롭기도 했지만 기특하기도 했다.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면서 어떻게 참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좋아하는 간식으로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티는 거 아닐까?" 아내의 말처럼 우리는 더 먹기 위해 참고 기다릴 수 있는지도 몰랐다. 영리하기는 했지만 음식을 향한 집요함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나 역시 식탐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한 시절을 지나왔다. 남자 형제는 생존 앞에 라이벌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라면 한 그릇을 놓고도 서로 더 먹기 위해 싸우곤 했다. 동생보다 항상 조금 더 먹었지만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음식 말고도 결핍의 갈래는 다양했고 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가 나를 괴롭혔다. 성인이 되고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형편에 이르렀지만 식탐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화도 시키지 못할 다양한 음식을 탐하고 못 먹을지언정 남에게 뺏기기는 싫었다. 이제는 더 맛있는 음식, 더 값나가는 물건에 마음을 빼앗겼다. 탐하는 마음은 먹는 욕망에서 소유를 향한 욕심으로 모습을 달리했다. 탐심은 아무리 가져도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고 결국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면 넘치도록 가득 차 있는 포만이 찾아왔는데, 만족감보다는 불쾌감에 가까웠다. 과식보다는 소식이, 과욕보다는 만족이 사람을 더 건강하고 풍족하게 만들었다. "여보, 학교에서 어떤 유형의 학생이 공부 제일 잘하는지 알아? 눈 앞에 있는 작은 쾌락보다 미래에 있을 더 큰 보상을 위해 인내할 줄 아는 애들이 공부도 잘해."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아지인 우리도 보상을 위해 '기다려'를 기꺼이 행했다. 가끔 내게도 '기다려'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