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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Sep 13. 2023

대통령 전용기를 타는 VVIP들의 공통점은?

UNWTO 인턴 중, 인생 처음으로 국제공항에서 받은 VIP 대우

1. 공군 1호기! 그러니까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입니다. 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뭘까요~?


 전에 쓴 브런치 4화(고급 호텔에서 받은 에르메스 회장의 편지)에서 선진국에 가면 꼭 좋은 호텔에서 차를 한잔해보라고 조언해주신 지인을 기억하시나요? 그분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에 타신 경험이 있어요. 그때 대통령 전용기에서 근무하는 승무원이 말한 VVIP 고객의 공통점을 제게 말씀해주셨는데요. 무엇인지 감이 오시나요?


한번 맞춰보세요!


2. ‘지구는 둥근 게 아닌 것 같은데….’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도착할 때면 늘 생각한다. 나는 국제지평설연구학회(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학회)의 멤버도 아니지만, 결코 세계가 둥글지 않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공항에 도착하고 나면 지구는, 이 세계의 의미는 한 손에 꼬옥 쥔 여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작은 네모난 수첩엔 여권 번호부터 해서 발급일 만료일, 이름, 생년월일, 목적지까지... 그걸 넘어서 비어있는 종이에 스탬프 사인이 찍혀야만 한다.


3. 그래야 비행기 타기 전부터 늘 바라고 그리던 그 여행지와 그 도시를 지날 수 있다. 해외에 가면 여권은 이렇듯 언제나, 항상 나의 곁에 머문다. 지구는 둥글며, 세계는 막연하게 넓은 걸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여행을 직접 해보면 이렇게나 규격화되고 분명한 수첩 안 틀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공한 관리의 근엄하고 굳은 표정 뒤에 찍히는 도장의 색깔과 스탬프의 부피로 이 세계의 틀을 가늠해본다.


4. 그런데 오늘 프놈펜 국제공항에선 늘 무섭게까지 느껴진 공항 관리의 표정도, 그 긴 대기 줄도 다 다르게만 느껴진다. 턱이 진 사각형의 그 수첩 속 무수한 층, 얇은 계단들 사이에 찍힌 짙은 잉크 스탬프를 살펴볼 겨를이 없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경찰과 캄보디아 정부 공무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 나의 입국을 도와주신 캄보디아 소속 공무원과 경찰 선생님들

 그들은 아주 기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나의 목에 캄보디아 전통 스카프를 걸어줬다. 처음에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해서 물었으나 그들은 나의 이름과 소속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5. 세관을 통과하는 길도 달랐다.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 일반 게이트가 아닌, ‘UNWTO’라는 큼지막한 팻말이 있는 게이트로 나왔다. 그 사이 경찰은 나의 여권을 가지고 갔고, 순식간에 스탬프를 찍어서 돌아왔다. 그리곤 내 눈을 보며 방긋 웃으며 말한다. “이 녹색 스탬프는 외교(diplomatic) 비자입니다. 혹시 캄보디아에 계시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서나 관공서에 바로 이 비자를 보여주세요. 가시죠. 공항 뒤편에 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항에서 대우받아보는 게 처음이고, 익숙지 않은 상황에 민망하기도 해서 괜히 여권만 만지작거렸다. ‘여권…. PASSPORT…. PASS...PORT...’


▲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diplomatic visa 사진


6. 이름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여권은 항구(PORT)를 통과(PASS)하던 시절에 생겨난 말이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던 그 옛날보다 더욱 제한되어 가고 있는 게 당연시되는 요즘이지만, 오늘의 경험은 아주 색다르다. 밴에서 홀로 생각했다. 왜지? 마드리드에선 이런 거 전혀 없었는데? 캄보디아가 해외원조를 받아서 유엔 기구 인턴마저 이렇게 대해주는 건가? 아니면 UNWTO와 큰 행사를 개최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그래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도대체 거기 가서 무슨 일을 하는 거길래 쩌리인 내가 이런 대우를 받지?


7. 계속 생각하니 복잡하고, 긴장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 조수석에 앉은 공무원분께서 내게 간단 서류에 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서류를 건네받고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펜으로 이름을 정자로 서명했다. 그러자 그 공무원이 말했다.     


“역시, 당신의 펜을 가지고 계시네요.”


8. 감이 잡히셨나요? 대통령 전용기 승무원이 말 한 VVIP의 공통점은, 일반 비행기와 달리 아무도 승무원들에게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사소한 출입국 신고서류를 체크할 때도 ‘자기의 펜’으로 서명을 한다는 것이었죠. 과한 해석일지 몰라도 흔히들 말하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언제든 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받아들였어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도 ‘자기의 펜’이 있나요? 아니면 특히 좋아하는, 애정이 가는 펜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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