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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Jan 21. 2024

지렁이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뉴스 리포트 중 꼬물꼬물 지렁이 밑줄

1. 영국 당대 유명 작가이자 비평가인 힐레어 벨록이 작가의 꿈을 가진 한 청년에게 조언했다. 나는 늘 이 조언을 가슴속에 품어두고 사는데, 벨록은 이렇게 말했다.


2. “한 가지 주제를 물고 늘어지세요. 그가 스무 살 때 지렁이에 관해서 쓰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40년 동안 지렁이 이외에 다른 글은 쓰지 않더라도 간섭하지 마세요. 그가 예순 살이 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렁이 대가 집 앞에 순례자들이 모여들어 무릎을 꿇을 거랍니다. 그들은 그의 문을 두드리며 지렁이 대가를 뵙기 위해 애원할 것입니다.”


3. 나의 지렁이를 찾아내야 한다. 꾸준히 지속할 수 있고, 내가 잘하는 거 말이다. 얼마 전, 뉴스룸에서 지방의원 의정비 최대 인상에 관한 리포트를 했다. 의뢰한 CG가 밀려 늦게 나오고, 뉴스룸 조명도 늦게 켜줘서 연습을 제대로 못 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4. 약간 당황했는데, 선거 때 유럽 기자들이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엄청나게 제스처를 하고 밑줄도 막 그면서 말을 해나간 걸 떠올렸다. 이탈리아 수업에서도 터치스크린은 현장감이 없으니 기자가 밑줄 그을 때, 다소 오버를 좀 해도 된다고 배웠던 게 기억났다. 다소 안정감이 들고 촬영 시작!


5. 왕지렁이를 몇 마리 그렸는지 모르겠다. 그간 인생을 살면서 ‘나의 지렁이’를 찾고자 그렇게 노력했지만, 평생 찾을 지렁이는 터치스크린에 다 그렸다. 나중에 엄마께서는 8시 뉴스를 봤는데, 지렁이도 그렇게 가다간 지렁이 창자가 다 터져서 죽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푸하하


▲ 터치스크린에 등장한 '꼬물꼬물 지렁이 밑줄'들 가운데 하나


6.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도 나만의 지렁이가 있나요? 아니면 저처럼 나의 지렁이를 찾고자 더듬이를 곤두세우시나요? 그리고 제 지렁이는 조금 과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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