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에 드는 생각_숫자의 불행, '엄밀하고 정확한... 과연 그럴까?'
1. 어른들은 항상 숫자에 관해 묻기 좋아한다. “몇 살이니?”부터 시작해 칼로리, 월급봉투의 숫자까지. 요즘은 본격적인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숫자를 더 많이 접하는 것 같다. 기호 몇 번, 후보의 재산은 얼마, 범죄 전과는 몇 번. 숫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많이’, ‘조금’ 같은 말들이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우리는 작은 차이에 집착하곤 한다.
2. 0.16%... 1%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숫자다. 내가 있는 지역의 시각장애인 유권자는 0.16%에 불과하다. 또, 시각장애인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은 점자를 읽지 못한다. 선거 관련 후보자 점자 공보물이 도착해도, 읽지를 못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분들을 인터뷰했는데, 선거 때마다 볼 수가 없으니 매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3. 한 분은 '만약 우리 수가 좀 많았더라면...'이라고 안 들릴 정도로 조용히 중얼거리셨다. 2020년 12월에 공약을 음성 등 디지털 파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법은 개정됐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는 후보자는 많지 않다. 인간은 모든 수를 숫자로 나타내려 한다. 가끔은 잔인하리만큼, 퍼센트나 통계로 저울질한다.
4. 지금도 TV에서 사람들은 숫자로 비교하고, 비교가 끝나면 하나의 합의된 공식처럼 싸운다. 원시인들은 돌의 부딪침을 통해 불을 발견했다고 한다. 양손에 돌을 쥐고 얼마나 부딪혔을까는 딱히 궁금하지 않다. 그런데 따뜻한 불을 통해 주위를 밝히는 불이 아니라, 숫자를 쥐고 싸우기 위해서 싸우는 부딪힘은 안 보고 싶다.
5. 단순히 정치 토론 말고도, 인간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문제들을 앞에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 같다. 이 세계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그 많은 수 가운데, 몇 번을 되풀이해 가면서 손꼽아도 셀 수 없는 것도 많다.
살아가는 데 아주 깔끔하고 명확하게 수로 답이 나오는 계산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도대체 숫자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계속 사람들을 따라다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