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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un 11. 2023

시간과 시계꽃

재작년 늦가을에, 우리가 새집으로 이사하고 난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내가 정원을 디자인하고, 덩굴장미 및 여러 가지의 나무를 심고 난 뒤에, 마나님께서 뿌리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조그마한 줄기 식물을 가져다주시며, ‘심어보세요 시계꽃이랍니다’라고 하였다. 잎도, 눈도 없이 생명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으로 화분에 심었는데, 화분의 크기는 일반 도로변에 꽃을 심는데 사용하는 1.2m x 0.45m x 0.5m정도의 큰 화분 13개를 테라스에 설치하였다.    

 

거기에다 덩굴장미를 심은 터라 공간이 별로 없어 모퉁이에다 심었다. 곧 겨울이 닥치고, 생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애를 태웠는데, 작년 봄이 되었는데도 싹이 틀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다 4월, 5월이 될 때 새 아기의 울음소리와 같은, 움찔하다가 눈을 살며시 떠보는 아가의 눈처럼, 조그마한 새잎이 돋더니 활발하지 못하고,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하릴없이 돌아가는데 이 시계꽃은 생면부지한 것 같이 나를 쳐다볼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새로운 땅에 숨을 쉬려고하니 땅도 푸석푸석하고, 주인도 인간적인 면모도 없고, 여기 살다가는 시간이 아니라 시각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매일 아침 운동하고 돌아와 물주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대화를 해보는데 다른 놈들은 물맛이 좋다며 애교를 부리는데 저놈은 삐뚤어져 앉아 있다. 왜 저럴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름이 시계꽃이라 어떤 약속시간이 되면 움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덥다할 정도의 날씨가 되니 이놈이 슬슬 몸부림을 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땅 냄새를 맡았나보다. 그래, 내가 보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놈은 자라기 위해 모든 애를 쓰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인 것이었다. 조금 자라더니 덩굴을 뻗기 시작하고 6월의 초순 정도 되니까 1m 정도 줄기가 뻗어나고 봉오리가 맺혔다. 생전에 시계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호기심도 극에 도달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오니 시계꽃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 뒤 일요일, 물을 주고 해가 깔끔하게 뜬 12시정도 되어서 밖을 보니 정말로 시계형태를 한 아주 예쁜 꽃이 피어있었다. 시간을 알려주는 계기판이 꽃밭침으로 되어 있고, 시침과 분침이 엉거주춤한 내 마음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마 그 때 내 마음의 시각은 아마도 27시 50분쯤 가르키고 있었을 것 같다. 

    

사람들도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일들을 추진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올해의 시계꽃은 작년에 비하여 훨씬 일찍 계절에 적응하며 나의 물주는 기대에 부응하며 잘 자랐다. 덩굴장미가 시계꽃보다 훨씬 웃자라서 경쟁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장미가 세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맞추어 엄청난 덩굴을 뻗으며 울타리를 넘어 아랫집 까지 훔칠 태세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며칠 전부터 봉오리가 생기더니, 작년에는 한, 두 세 개정도 였는데, 지금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많은 봉오리가 생겨났다. 지금 피고 있는 시계꽃을 지금의 시계와 비교해보았더니 역시 사람은 시간이 모자라게 살아 왔음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계꽃이 사람보다는 일찍 지구에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물들은 진화하여 자연에 적응하기에 최선을 다한다.      


시계꽃의 시간은 12시간이 아니라 10시간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그때 바빌로니아인들도 하루의 시간을 시계꽃처럼 10시간으로 하고자 했을 것이다. 10진법은 헤아리기 쉽고 사람의 손가락이 10개여서 10진법으로 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그리 했을 지도 모른다. 그 후 사람은 농사를 지어야하기 때문에 그 시기를 달이 떠는 횟수에 맞추어 12번의 달이 뜨는 회수에 맞추어 1년을 12달로, 하루를 12시간으로 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후에는 일시적으로 10진법의 달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시간은 100분, 1분을 100초등으로 하였다가 폐기되기도 하였다. 나의 소견으로는 사람이 하루 10시간으로는 너무 짧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12시간제도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시계꽃]

또, 시계꽃은 5개의 시침과 3개의 분침을 가지고 있다. 10시간을 5개의 시침으로 나누어보면 2시간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하루를 2시간씩 나누어 집중할 수 있도록 꽃을 키우는 사람에게 넌지시 가르쳐주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삶을 이루어 간다. 그러다보면 수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매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시계꽃의 의미대로 2시간 일하고 한 숨 돌리고 정신 차리고 2시간 일하고 하는 리듬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3개의 분침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시간을 사용할 때 여유를 가지고 임해라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우리가 갖고 있는 1개의 분침은 너무 빨리 돌아간다. 너무 사람을 다그치는, 일을 안하면  월급도 없다는 아주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힘든 하루를 밀고 가게 한다. 시계꽃을 보라! 세상에 그 많은 시계의 디자인이 있지만, 시계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아주 인간적인 시계를 본적이 있는가. 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만들기 전에 자연으로부터 빌려 쓰야 한다.   

     

지금 나의 테라스엔 시계꽃 덩굴이 이어져, 많은  봉오리를 맺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시계꽃은 낮에만 활짝 피어 사람에게 시간을 제시하고 해가지면 시간을 접는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우리는 해가지면 일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 후엔 가족과 같이 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밤에 꽃잎을 닫고 있는 저 시계를 강제로 가게해 보라, 아마도 그 시간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을 거슬러 억지로 시간을 가게한다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 날 것이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시계꽃이 그러하듯이 그 환경에 적응하여 많은 꽃을 피우려면, 기다림이 절대로 필요하다.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고 지겨워하며, 그 시간 사이에 사고를 낸다.     


시간, 그것은 시계꽃을 보고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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