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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May 10. 2024

새초롬한 새벽달

얼굴이 까칠하고 다가서는 태양에 은근히 원망하는 눈초리다. 새벽이 깨어지고 어렴풋하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 위에 다가서는 일상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곱기도 하다. 호수에 새끼오리들이 헤엄치듯, 검은 바다위로 통통배가 헤엄을 하면서 먹이를 찾아 떠나고 있다.

 저 달님도 밤새 인간사를 지키느라 피곤 할만도 한데다가 님은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한쪽에는 눈물 자욱이 남아 있고, 위쪽에는 눈을 비빈 자취가 보인다. 같은 시간에 지구는 팽이처럼 돌아 태양을 빨리 이끌어 오나보다. 한 달 전만 해도 컴컴했던 새벽이 요즈음은 발아래 시커먼 껌 딱지가 보이기도 한다.    

 

아마 달님도 참 괴로울 것 같다. 요즈음은 메모리칩을 심어서 기억용량을 늘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달님은 밤새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기억하려면 요즘처럼 AI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 그 숱한 일들을 보고 말없이 견딘다는 것은 도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이면 충분히 좋아할 만하다. 보통은 그 많은 일들에 대한 입을 벌리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입을 가졌다는 걸까.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묵언을 수행할 수 있지만, 저 창백한 달님은 어떻게 묵언 수행을 할 수 있을까? 달님이 달리 역할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그 숱한 이야기들을 기억할 용량이 다 차버리고 더 기억할 수도 싫을 뿐 아니라, 말하기조차 아까운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 실어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에서 보면 얼마나 볼썽사나운 일들이 많겠는가, 도둑질, 강도질 등은 순위 안에 들지도 못 할 것이고, 전쟁, 지진, 살인 등 차마 생명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주 잔인하게 일어나는 살인,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분노에 또, 실어증이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볼 것이다. 그리고 느낄 것이다.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는 달이지만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아무런 일을,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또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세월호 사건을 쳐다보면서 더욱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였을 것이다. 밀물과 썰물을 보다 확실하게, 힘차게 이끌어 세월호 부근에 물을 갈라놓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인 모세도 바다를 가르는데 사람보다는 힘이 강할 자연의 한부분인 달님이 그저 그 많은 새파란 생명들의 숨이 멈추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니 얼마나 가슴 저렸을까. 한편으로는 저 나라는 무엇 하는 나라일까 하며 한 숨도 쉬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말문이 막혀 버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태원 참사 때에도 하늘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고함쳤을 것이다. 그 고함소리는 구름, 비, 바람에 막혀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고, 달님은 또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능력에 이제는 귀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리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삶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 망원경처럼 커다란 빔 프로젝트를 하늘 위에 띄워 놓고 사람들에게 사는 방법도, 방향도 강의하고 싶었을 것이다. 너무 과하게 살면 꼭 거기에 상응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인간은 조심한다고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조심할 수 있으나 남을 위해서는 조금도 조심스런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이 대해서도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이라는 날이 있어 유일하게 달님과 의사소통 하는 날이다. 아마 달님도 이날을 기다릴 줄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달님을 대상으로 기도하면서 각자의 바램을 이야기 한다. 달님은 사람들의 기원을 기쁘게, 진실 되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달집을 만들어 살아가면서 생기는 모든 악재들을 달집에 넣고 태우기를 한다. 멀리서 쳐다보면 갖가지의 기원을 들을 텐데, 모두에 대하여 응답할 수 없어도 한, 두 가지라도 생명을 키우고 지키는데 길을 제시하여 주었으면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길은 제시한다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지만, 누구라도 그 표정을 읽거나 품을 수 있으면 고귀한 생명들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올해 정월 대보름에 낙안 민속마을의 대보름 잔치에 잠시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성벽 위로 돌고 있는데 꼬마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질서정연하게 성벽위로 돌다가 달집이 마련된 마당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또는 무슨 기원을 위하여 저렇게 많이 모였을까 보면, 역시 가족 사랑이고 아이들의 소중함이었다. 달집 주위로 한참을 도는데 갈수록 참가 인원들이 증가하였고, 달집에 불이 붙고, 그 타는 형상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재는 모두 태우고 가는 것 같다. 저 활활 타는 불을 어느 소나가가 막으랴하는 생각과 더불어 불타고 있는 달집 속에는 이루지 못하고 한으로 남은 시커먼 숯 덩어리를 태워버리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림과 동시에 아주 둥그렇고 인자한 달님에게 이룰 수 있는 소원을 빌어 보는 것이다. 달님에 대한 기도는 간절함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간절하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낙안민속촌 정월대보름]


달님은 위에서 사람들의 간절한 이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도 적잖이 듣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자기의 바램을 기도하는데 달에 대한 기도의 의미는 뭘까?

태양은 매일 뜨고, 매일 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데도 공기처럼 그 중요성을 때때로 잊고 산다. 사람들은 태양은 절대로 없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뜨겠지”라고 믿음에 걸쳐 있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지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달님은 자주 볼 수 없는데다, 있을 때도 그 모양이 변하고 있어 저 다음엔 무엇이, 또는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날까, 또는 일어날 것이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태양처럼 너무 뜨겁지 않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달님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 되는데, 달님은 창백한 얼굴이지만, 맑기도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 해준다는 것이다. 초승달은 마음이 꺼져 있는 불씨도 살릴 수 있다는 뜻이 있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점차 커져가는 것도 느낄 수 있어 실망과 일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만가만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차츰 차서 보름달이 되면 너무도 맑고, 밝고 미소를 띠고, 무언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달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무언가에 대한 답을 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내가 강을 따라가면 우리 집까지 바래다 줄 것 같이 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실제로 따라오는 것이 보인다. 혹 가다가 내 어깨 뒤에서 밀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귓속말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달님이 차츰 기울면 내속에 못 박혀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뚫어 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차츰 작아지다가 눈을 아래로 감는 슬픈 모습으로 나의 마음을 다듬어 주기도 한다.     


결국 달님에 소원을 빈다는 것은 나의 바램을 비는 것도 있겠지만, 저 밝고 넓은 가슴으로 나를 이해해 준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잔잔한 호수의 정다운 달이 되기도 하고, 파랑이 이는 호수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우기도 채우기도 하면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고고한 달빛이 되기도 한다.     


내가 달을 보는 것만큼, 아는 것만큼 가까워지고 친근해 진다. 요즈음은 누구나 바빠서 하늘을 쳐다 볼일이 적어져 가지만, 혹 달님이 보고 싶을 때는 정작 달님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답답할 경우도 많다. 

    

달님은 항상 나의 곁에서 친구처럼 함께하며, 때로는 한 가족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멀리 계시는 아버님과 어머님도 저 달님에게 나의 안위를 비는 모습을 귓속말로라도 나에게 전해기 위해 나를 따라다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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