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가을 맛은 귀뚜라미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저 들은 그 뜨거운 여름 속에서도 작곡 공부를 하느라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었나 보다. 창가에 귀뚜라미의 협주곡은 단연코 단조인 것 같다. 악기로 치면 테너 색소폰 같이, 저음으로 크레센도, 디크레센도가 아주 적절히 배합된 단조이다. 테너 색소폰은 아주 묵직한 저음이 심장을 울리는데, 귀뚜라미 소리는 너무 스글픈 바이올린 소리는 아닌 것 같고, 할 수없이 귀뚜라미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를 만들어 가을을 빨리 불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기다림]
잠자리에 불을 끄고 누우면 더욱 애절한 소리가 커지는데, 이는 누군가 지휘하는 지휘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달빛이 창가에 고독스레 밀고 들어오면 아주 고요한 연주가 침대 바닥을 타고 들어와 안 그래도 애잔한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새벽에 밖에 나가보면 그 때까지도 협주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음악 부분에서는 사람을 능가하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사람들과는 생체 시계가 다른가보다. 사람들은 보통 밤에 연습하고 낮에 연주하고 발표하는데, 밤새 연주했으니 낮에는 푹 자는 리듬을 가지고 있나보다.
[가을이란 가슴을 이글거리게 하는 것]
매미는 7년 만에 땅에 올라와 여름 한 철을 연주하고 퇴장해야 하니 너무 억울하기도 해서 아주 고음으로 연주를 하니 사람들은 이를 시끄럽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가을을 부르는 귀뚜라미 연주를 시끄럽다고 하는 말은 아직 들어 보지 못한 것 같다.
정말로 어릴 때, 초가집 지붕에 하얀 박꽃이 피고 순박한 박이 달빛을 받고 있을 때의 귀뚜라미 연주는 어린 마음에 애절함을 불러다 주었는데, 그 때의 소리가 호롱불 사이로 새어들어 오면 외딴 마을에 조그마한 아이는 달이 왜 저렇게 하얗고 쓸쓸히 빛나는지 애닯아 했다.
[외딴 마을 외딴 달]
외딴 마을, 외딴 달, 외딴 별, 외딴 냇가, 오가는 사람 없는 외딴 사람, 외딴 개짓는 소리, 그 어느 외딴 생물도 움직이지 않는, 사악사악 댓닢 비비는 소리가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소년은 그 때부터 낙서를 시작하고 옴지락꼼지락 글을 쓰기 시작했나보다. 그 평화스런 마을에 폭풍과 홍수가 쳐들어와 과거를 모두 잃어버린 소년에게도 초등학교 무릎에야 외딴 마을에 같은 또래 아이가 둘이 있다는 걸 알았다. 세월이 흐른 뒤 한 소년은 지리산 염소 키우러 들어갔고, 한 소년은 독재 시대에 세계를 항해하다 주지 스님이 되었고, 한 아이는 가을에 가을 블루스를 적고 있다.
[외딴마을 외딴집 : 마음의 고향]
지금은 세월이 보이고, 가을이 보인다. 어릴 때 가을 벌판 허수아비가 펄럭이고 우르르 참새가 떼지어 다니는 것을 보고, 저것들을 어찌 잡을까 하는 생각과 나무 새총을 만들어 쏘기도 했던 나지막한 일들이 돋보기 속에 왔다 갔다 한다.
[통학열차]
그 때 기차타고 통학하던 시절의 길가엔 코스모스가 정말 예쁘게 피어 있었는데, 동화 같은 세상이었던 것 같다. 먼 산에 있는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워 실제로 산을 헤집고 도달해보니 모두가 벌레 먹은 돌배나무 잎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 보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르다고. 이것은 어린 가을이 가르쳐준 말인데 지금도 그 말이 삶에 투영되기도 한다.
그 소년이 내린 기차역에서 멀어져가는 기차속의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절로, 가을 햇살 속에 비치기도 한다.
[아! 세월이보이고, 가을이 보인다]
그렇게 예쁜 가을이 나에게 와 있는데, 지금은 그냥 멍하니 귀뚜라미 합주를 들으면서 새벽길을 걷고 있다. 조금 있으면 꼭 옛날을 닮은 태양이 내 품속으로 들어와 앉을 것 같다.
[퇴고를 하지 못한 내마음, 내 가을]
가을은 나에게 있어 퇴고를 많이 해야 하는 정리되지 못한 시와 같다.
어슬프고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