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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한아빠 Dec 14. 2022

나는 왜 영업 사원이 되었나.

장래희망에 대한 번뇌

 초등학생 시절, 의례 장래희망을 적어 제출할 때, 딱히 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공부도 눈에 띄게 잘하는 최상위권은 되지 못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건, 부모님의 희망사항은 ‘교수’였다. ‘선생님’도 아닌 ‘교수’라는 것이 그땐 뭔지도 몰랐고, 후에 어머니께 이유를 물어도 “그냥 너랑 왠지 어울렸어”라는  멋쩍은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희망 전공은 심리학과였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만 심리학과가 있는 대학은 그리 많지 않았고, 아쉽게도 내 입시 성적은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당시 담임선생님의 굉장히 무성의한 권유로(“네 점수면 그냥 여기 써!”) 모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전공에 대한 흥미가 없었기에 학업에도 그리 열중하지 못한 채 원 없이 젊음을 즐기기만 했다.


 정작 찾는 사람은 관심 없는, 소외당한 보물찾기 속 상자 같던 내 장래희망은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청년층의 취업난은 심각했다. 1학년 때부터 미리 준비한 친구들은 자격증과 토익 성적 등의 스펙을 쌓은 반면, 나는 2학년을 마칠 때까지 매 학기마다 쌍권총(F학점 x 2)을 받았다.(강의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군 전역 후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지만, 젊은 날의 방황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 졸업 직전 학기까지 계절학기를 수강하며 졸업 최소 학점을 채우기 바빴고, 외국인들과 놀면서 배운 영어는 토익 점수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었다’라는 모 개그맨의 말씀을 되새기며 기업 공채 서류 전형 커트라인 수준의 최소 기준만 준비한 채, 어떤 일을 할지, 아니 할 수 있을지 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에 영업직을 선택한 이유는 총 3가지였다.


가장 친했던(공교롭게도 같은 과, 같은 동아리) 2명의 선배가 1,2년 앞서 유명한 식품회사 두 곳에 영업직으로 각각 입사했다.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둘이 짧게나마 직접 겪어본 직무가 내게도 잘 맞을 것이라 추천했고, 귀가 얇은 나는 매우 솔깃했다.


대학 졸업예정자 대상으로 현직 선배들의 직무 소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때 한 영업직 선배의 휘황찬란한 1시간짜리 강의를 들으며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매우 단순하고 허무맹랑한 상위 1%만의 이야기였다...)


마지막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본격적으로 취업 공고를 찾아보다 보니 영업 직군의 모집 인원이 가장 많았다!(이땐 그 이유를 몰랐다...)


 나름의 시장 포지션을 가지고 있던 중견 식품 기업의 인턴 모집에 지원, 운 좋게 합격했고 두 달간의 짧은 근무를 마치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동 회사의 정규직 모집 때 최종 입사 합격했다. 이렇게 내 회사원 인생은 1년이 채 되지 않는 나름 짧은 기간만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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