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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한아빠 Dec 24. 2022

당신은 직장 생활 멘토가 있습니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배들과의 에피소드.

 (이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작성된 100% 허구입니다. 혹시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더라도 분명 우연의 일치임을 밝힙니다.)


 10년간 직장 생활을 했지만, 아직 완전한 이상형의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일 잘하는 사람, 인간으로서 멋진 사람 등 좋은 인연들은 많이 만들었지만,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분은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만나지 못하리라.


 A회사 근무 시절 K지점장님은 굉장히 멋있었다. 마초의 상징이랄까. 당시 내가 소속된 영업부는 서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거래처들의 지리적 특성을 살리고자 서울 서북부 외곽의 별도 사무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강남에 있는 본사에 비해 독립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월요일 아침의 조기축구였다. 아침 6시까지 사무실 근처 구민 체육회관에 모여 축구를 하고, 샤워를 한 뒤 8시부터 근무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K지점장님은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웃옷을 벗고 금 목걸이를 찰랑이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월요병이라고들 하지? 나도 주말에 쉬고 다음날 출근할 생각을 하면 아주 힘들어. 근데 말이야. 월요일 아침에 근무가 아니라 축구하러 나온다고 생각해 봐. 더 신나는 마음으로 나올 수 있지 않겠어?”


 이 코멘트는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 분은 평상시 직원들을 칭찬할 때도, 때론 잘못을 지적할 때도 매우 화끈했다. 팀 실적이 부족하면 앞장서서 주말 근무를 자청하기도 했다. 또한 ‘애국’을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지지하는 정당에 관계없이 모두 꼭 투표를 해야 한다며 투표 인증샷을 단체 메신저 방에 올리고, 올리지 않으면 즉시 출근시키겠다는 엄포도 하신 기억이 난다. 한 선배가 금전적인 사고를 쳐서 퇴사를 하게 됐는데, 사건이 공식화될 경우 해당 선배는 동종 업계 재취업에 불가했다. 이에 이 지점장님은 해당 선배의 퇴직금에 본인의 사비를 보태 사건을 커지지 않게 막았다. 당시 어린 마음에 ‘이 분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뛰어난 실력 덕에 금세 본사로 발령이 되셔서 더 이상 모실 수는 없었다. (이후 초고속 승진까지 이루셨지만, 사내 정치에 밀려 결국 퇴사하셨다고 한다.)


투표를 독려하던 K지점장님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배님).


 P선배는 내 직속, 속칭 사수였다. 홀로 오랜 막내 시절을 견뎌서 있지 유난히 나의 입사를 반겼고, 팀 내에서 우리 둘만 나이가 어린 관계로 한 주에 1회 이상 술자리도 자주 가지며 나름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상사가 윽박을 지르는 게 너무 힘들다는 고충을 털어놓길래, 남 일 같지 않기도 해서 바쁜 업무를 미뤄두고 한참을 위로해 줬다. 밀린 업무를 부랴부랴 처리하고 뒤늦게 퇴근하는 길에,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며 통화는 길어졌고, 집에 도착할 즈음 통화를 마치자마자 모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 선배님 "

"야! 너는 무슨 통화를 그리 오래 하냐! 내가 몇 번이나 전화 걸었는지 알아?!"

그날 그 선배는 나에게 분명 ‘윽박’을 질렀다.


 B회사의 J팀장님은 실제 뵙기 전부터 여러 소문이 있었다.

“그 사람 스타일이 그렇게 힘들다던데? 그 사람 때문에 퇴사한 애들이 수두룩이야.”

“모 지점 OO 씨 알지? 그 팀장 밑에서 2년간 온갖 고생 다 하더니 팀 옮겨와서 에이스 됐지.”

실제 겪어본 J팀장님은 굉장히 프로페셔널 한 사람이었다. 항상 장기적 계획을 고민하고, 여러 가지 대책도 다방면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다만 본인의 스타일을 팀원에게도 주입하다 보니 그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매일이 고역이었다. 오전 8시 전에 출근하면 항상 나를 옆자리로 불러 그 달의 목표 대비 현재 진도율, 목표를 채우기 위한 A, B, C 플랜, 오늘 하루의 계획과 그 이유 등등을 보고 받았다. 일과를 마치고 나면 오전의 브리핑 내용을 다시 처음부터 되짚으며 변동 사항을 체크했다.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성인'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다른 팀원들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는 기분이었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그리고 모두가 퇴근하고 난 뒤 옥상에서 매일 10분씩은 멍하니 서 있었다. 끊었던 담배는 오히려 늘었다.

 당시 아내는 첫째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는데,  가족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퇴근할 때도 둘은 잠들어있던 고된 생활은 약 1년간 지속됐고,  난 그렇게 두 번째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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