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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흔 Dec 12. 2022

오래전 삶의 터전들

내가 보기에 멋지고 화려한 곳도 어느 누구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나는 친구들과 가끔 명동에 있는 '가무'라는 커피숍에 갔었다. 


가무는 건물의 2,3,4층에 걸쳐 3개 층을 사용하는 커피숍이었는데, 늘 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 속 가무의 컨셉은 보라색이었다. 

여기에 가는 이유는 비엔나커피와 팬케이크를 먹기 위해서였다. 

물론 지금은 흔하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는 굉장히 특별한 맛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오픈하는 시간 전에 간 일이 있었다.

늘 카페에는 조명으로 분위기 좋은 곳이었는데, 오픈하기 전에 보는 커피숍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침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햇빛이 들어오는 4층 커피숍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졌다.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에 비친 먼지는 춤을 추고, 은은한 분위기가 있던 곳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느낌을 두 번 더 느낀 적이 있다. 


종강 파티를 하기 위해 예약했던 나이트클럽이 갑자기 바뀌어, 청계천에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연주를 하던 밴드가 여성 그룹이었다. 

그날 나는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밴드의 멤버들은 스팽글이 달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중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던 싱어의 스팽글이(기타를 치다 보니 그렇겠지만) 떨어져 있던 모습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애잔하게 떠오른다.

밴드의 연주는 내게 즐거움보다는 슬픈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신들이 원해서 하는 공연이었겠지만, 그들의 힘든 삶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 한 번은 내가 서울 H호텔 커피숍에서 큰 유리창으로 시내를 보는데, 유리창의 먼지가 눈에 띈 적이 있었다. 

외관부터가 깨끗하게 보여야 하는 5성급 호텔이지만, 유리창의 바깥쪽에 묻어 있는 먼지는 어차피 누군가가 로프를 타고 외벽을 내려오면서 닦아야 했을 것이다.

그때 나의 느낌은 가까이하기 어렵고, 웅장한 호텔도 역시 구석구석 사람의 손이 닿아야 그 모양새를 갖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최고급 호텔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느꼈었다.




이건 여담인데... (물론 화장실에서 돈을 받던 사람들에게는 화장실도 삶의 터전이긴 했다)


대학교 졸업 후, 얼마 동안은 서울에서도 화장실 갈 때 유럽처럼 돈을 받았다. 

큰일은 30원, 작은 일은 10원(정확히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가격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호텔에서는 돈을 받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시내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호텔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말을 해줬다. 어려워할 이유도 없고, 나중에 너희가 크면 분명히 이용하는 곳이 될 테니 겁내지 말고, 이용하라고 했다. 

호텔 화장실은 깨끗하고 공짜니까.....



호텔 이용이 학생에게는 어려운 곳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졸업 후 모임을 할 때 3~4번 일반 커피숍에서 만날 돈을 모아 호텔 커피숍을 가보라고 했다. 그것도 여러 호텔을 돌면서 ~~

내 이야기가 얼마큼 전달됐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 제자들이 높은 빌딩에 주눅 들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은 학생들에게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너희들을 위한 것이니 겁내지 말고 도전해봐라'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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