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흔 Mar 24. 2024

한번 더 Manners Maketh Man

이번에는 누구를 어떻게 만들까


'Manners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이것은 영화 킹스맨에서 빠질 수 없는 명대사이자 흔히 말하는 젠틀맨을 설명하는 한 문장이다. 그리고 좌충우돌 초보 담임교사인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 읽고 싶다.   

  


'Attention Maketh Chatterbox.'     



음, 이렇게만으로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정확하게 문장을 표현해 볼까?     



'Attention Maketh Lovely Chatterbox.'



관심은 사랑스러운 수다쟁이를 만든다.   




반 아이들 한   명 특징은 많고, 그중에서도 미리 특징을 알고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 특징은 말 그대로 특징일 뿐이라, 담임 선생님들에게 배려해 주거나 신경 써주어야 하는 아이들을 알려주는 정보로써의 역할을 한다.



물론 그 특징들이 아이들에게 낙인이 되지는 않느냐 라는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동시에 여러 아이들을 관리하고 챙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칫 예민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이를 케어하기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처음 받은 명렬표 속 이름들을 보면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는 학생들에 대해 들은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의 개별적인 특징이자 예민할 수 있는 신체적인 특징 같은 것들도 있어서 앞으로 주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하던 와중에 한 남학생의 집중력이 실시간으로 흐트러졌다. 그 학생은 평소 흥분도가 조금 높아 수업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힘을 들여야 했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특히 그 학생이 있는 반에서는 꼼꼼히 신경을 쓰며 열심히 주의를 끌어왔었다.



하지만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와는 달리 수업이 시작되고 나니 집중하기 어려웠는지 듯 까만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조금씩 흥분도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한 것은 단 하나였다.



"친구야?"


"네..?"



정확히 그 학생을 보며 이름을 부르자, 학생은 혼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잔뜩 긴장한 채 눈을 깜박였다. 그 모습은 확실하게도, 언제나 그렇게 흥분도가 올라갈 때마다 혼났던 기억이 쌓여있는 모습이었다. 삽시간에 조용해진 교실에서 나는 딱 한마디를 던졌다.

 


"선생님이 늘 보면서 느낀 건데 우리 친구는 눈이 참 예쁘다. 속눈썹이 정말 길고 왕자님 눈이야, 완전."



왜 이렇게 예뻐? 너는 네가 예쁜 거 알아? 생글생글 웃으며 학생의 눈을 칭찬하자 빳빳하게 굳어있던 학생의 몸이 일순간 풀어졌다. 갑작스러운 칭찬과 관심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떨리는 눈동자에는 기분 좋은 설렘을 담았다. 그리고 그 눈은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흐트러짐 없이 기분 좋게 떨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남학생은 내게 자주 다가왔고, 정말 사랑스러운 수다쟁이가 되었다. 아이가 흥분할 때는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려주고, 아이가 얘기를 하고 싶어 하면 귀를 입 가까이 대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아침에 찬물만 나와서 추웠던 이야기,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 간밤에 꾸었던 꿈 이야기, 친구들과 속상했던 이야기,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연예인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꺼내며 내게 다가와주었다. 그렇게까지 많은 대화를 즐기는 학생인 줄 몰랐었는데, 이토록 사랑스러운 수다쟁이가 되다니 그 예쁜 눈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 이후 학생은 눈에 띄게 흥분도가 낮아졌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집중력이 높아지니 자연스레 학업성취가 높아졌고, 과목마다의 호불호는 있어도 전반적으로 고른 평균을 나타내게 되었다. 게다가 기특하게도 스스로도 관심 있는 과목을 찾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은 내가 건넨 질문 하나만이 이룬 결과는 아니었다. 아이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관심, 그리고 학부모님과의 대화와 연계가 이룬 결과였으며, 확실한 것은 학부모님의 커다란 사랑과 지지가 아이를 보다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수다쟁이 학생을 만나 1년을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관심의 힘은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첫 해의 내가 질문 하나로 사랑스러운 보디가드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 한 해에는 관심 하나로 사랑스러운 수다쟁이를 만들었다. 이렇듯 학생들에게는 많은 것보다도 단 한 번의 관심, 단 하나의 질문, 그것들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연달아 느낄 수 있었다.



이쯤 되니 다음 해가 기다려진다. 다음 해에는 어떤 학생을 만나고, 또 어떤 사랑스러운 누군가가 될까? 그런 기대감으로 나는 수많은 질문을 떠올린다. 다음 해에 만나게 될 사랑스러운 누군가를 위해서.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076855


매거진의 이전글 이게..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