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흔 Mar 31. 2024

스승의 날+손편지=사랑

생각도 못 했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정신없는 3월과 4월을 지나고 나면 괜스레 즐거운 5월이 다가온다. 그리고 5월에는 어김없이 부끄러운 스승의 날이 있다.




학창 시절 교실의 분위기가 떠들썩한 몇몇 날들이 있다. 반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선생님을 놀릴 수 있는 만우절과 5월의 스승의 날이 대표적인 날이다. 학생이었던 나도 반 아이들과 함께 초코파이 같은 과자에 초를 꽂고 선생님을 기다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반이 하나로 단합이 되고, 소속감을 느꼈으며, 행복해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이 너무 좋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선생님들께 그다지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스승의 날이 학기말도 아닌 학기 초가 지나자마자 있어서 더욱 표현할 타이밍이 아니다보니 그저 평범한 날이 되어버렸다고, 그럴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소속감, 그런 것들조차 다 사라져 버렸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얘기를 듣는 나도 이제는 교실의 풍경이 그렇게 변해버렸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게 다가온 스승의 날 아침, 아침 조례를 하기 위해 교실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아 박수를 치며 디벗으로 스승의 은혜를 틀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예상도 못한 처음 겪어보는 어색하고 부끄러운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자, 아이들은 성공했다는 듯 뿌듯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까르륵 웃음을 터드렸다. 교탁 위에 놓인 초코파이 산을 보면서 어쩜 나 때와 똑같을까! 하는 생각에 푸하하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판 위에 쓰인 빼곡한 손글씨와 칠판을 가득 채운 정성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시대가 변하고 많은 방법들이 사라졌어도 절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예쁜 마음을 느꼈다.



"고맙습니다, 다들.. 음... 처음.. 받아봐요."



처음이라는 단어를 꺼내는데 왜 울컥하는 것인지. 예전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께서 눈시울을 붉히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작디작은 고사리 손들이 모여, 예쁜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고 그것을 가장 예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그토록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것이 스승의 날의 의의라고 생각했다. 어떤 대단한 선물을 하고 비싼 선물을 하는 날이 아니라, 이제 막 성장기에 들어간 학생들이 학창 시절에 좋아하고 따르는 선생님이 생기는 것, 그리고 그 선생님을 향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 고민 끝에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쌓여서 자신을 사랑하고, 또 나아가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게 만들어주는,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날.



그랬기에 열심히 써 내려간 손 편지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2달 간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반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 같아서.



아이들의 축하와 손편지만으로도 배불렀던 나는 단체 사진을 찍은 뒤, 산처럼 쌓은 초코파이는 아이들에게 다시 나누어주고 맛있게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교탁에 옹기종기 모여서 초코파이를 먹으며 아침부터 밝은 표정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엥? 이게 뭐지?"



자리로 돌아와서도 몇 개의 손 편지가 놓여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편지들이었다. '완두콩 선생님' 이라니. 누가 놓고 간 건지 알겠다, 싶었다. 또 다른 편지 한 통은 정갈한 글씨로 이름이 쓰여있었다. 아이들은 편지마저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작은 초콜릿 하나, 편지 한 통, 이런 식의 마음을 닌자처럼 와서 자리에 두고 간 것이었다.



나 또한 중학생 시절 나를 가르쳐주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작은 과자와 함께 손 편지를 다 돌릴 정도로 열성적인 학생이었기에, 다른 반의 학생이 손 편지를 써준다는 것이 담임 반 아이들이 써주는 것과는 또 다르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작은 그 손에 한 자 한 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쓰던 이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 물음표의 끝에는 언제나 질 높고 즐거운 수업만이 있었다.



이래서 이 날이 있는 거구나. 정신없는 새 학기의 중간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날이었구나. 어느 반에도 소속되지 않아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나에게 이번의 첫 스승의 날은 많은 감정과 다짐을 안겨주었다.




"선생님.. 혹시 저 손 편지 써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으세요?"



아이들은 솔직하다. 솔직하게 따르고, 솔직하게 사랑하며, 솔직하게 표현한다. 하지요즘의 분위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에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대체 왜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데에 조심하게 되어버린 것인지 안타까운 감정 또한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자신의 감정을 글과 말로, 꾹 꾹 눌러 담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감사합니다 라는 한 마디의 위력이 얼마나 큰 지 너무나도 실감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표현해 주어야겠다. 너희들을 많이 사랑한다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076855


매거진의 이전글 한번 더 Manners Maketh Ma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