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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Apr 14. 2024

산타의 양말을 찾아서

양말이 뭐길래


"엄마.. 나 못 하겠어.."


땀에 흥건하게 젖은 채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제자리에서 동동거리며 무언가를 고민했는데, 그때의 고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하던 일주일간의 일과가 있었다. 그것은 장을 보러 가는 일이었는데, 집 앞에 생겼던 마켓부터, 새로 생긴 홈플러스, 다소 먼 역에 있던 이마트, 지금은 많이 애용하는 코스트코까지 엄마와 아빠는 항상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가시면서 오빠와 나를 데리고 가셔서 이것저것 구경을 시켜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마트에 들렀을 때 이마트에서는 어떤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 행사는 다름 아닌 산타 양말을 나눠주는 행사였다. 그때 당시 어렸던 나는 커다란 산타 양말이 무척이나 탐이 났고, 그것을 갖고 싶어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어린 내 마을을 읽으신 것인지 행사 상품을 받으러 함께 가주셨다. 그 당시 어른들이 나누던 대화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산타 양말이 다 소진되어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린 내가 얼마나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상심했을지를 생각해 보시라. 나는 평소와 다르게 엄청난 미련을 가지고 몇 번이고 정말이냐고 엄마께 여쭤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양말을 받을 수 없다.'였고, 나는 아쉬움 마음을 안고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나를 붙잡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시며 내 귓가에 속삭이셨다. 엄마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간이 고객센터(인지 행사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가 있었고, 그곳에 서서 웃고 있는 언니가 보였다.



"소흔아. 저기 언니 보여? 저기 언니한테 산타 양말 남은 것이 있냐고 가서 한번 물어볼래?"


"응! 물어봐줘, 엄마."



나는 당연히 양말을 받고 싶었고, 그런 내가 엄마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아니. 양말은 소흔이가 받고 싶은 거니까, 소흔이가 직접 물어봐야 해."




당시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었다. 쑥스러움이라는 것을 알아가던 초등학교 3, 4학년 시절 내가 가장 하기 어려웠던 것이 음식점에서 주문하기, 모르는 것 가서 여쭤보기와 같은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때의 나는 스스로 '초등학교 3, 4학년이면 더 이상 아기가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 큰(?) 아이가 가서 없다고 한 양말을 달라고 떼쓰는(그냥 여쭤보는 것이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엄마가 물어봐주면 안 돼..?"



그러다가 언니가 화내거나 뭐라고 하면 어떡해. 그런 생각에 자신이 없어진 나는 엄마를 보며 다시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단호하고 명확했다.



"양말을 받고 싶은 사람은 소흔이야. 그러면 소흔이가 직접 가서 여쭤봐야 해. 엄마가 언제까지고 소흔이를 대신해 줄 수 없어."


"만약에 양말이 없다고 하면 어떡해?"


"그럼 그때는 진짜 포기하고 집에 가는 거야."


"언니가 화내면 어떡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지금도 언니는 웃고 있잖아."


"내가 끝까지 못 물어보면 어떡해?"


"소흔이가 물어보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 가겠다고 하면 엄마랑 아빠는 그렇게 할 거야. 엄마 아빠는 소흔이가 어떤 결정을 하던지 괜찮아. 그러니까 소흔이가 후회가 남지 않게 선택해. 엄마랑 아빠는 소흔이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줄게."


"으으..."




언뜻 보니 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 어쩌면 언니가 엄마와 나의 대화를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려서 그렇게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자리에 앉아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냥 가서 아무렇지 않게 달라고 할까? 아니 아니면 있냐고 먼저 여쭤봐야 하나? 있으면 주실 수 있나요? 했는데 안 돼요. 하면 어떡해. 그러면 너무 부끄러워서 울어버릴지도 몰라. 아니면 엄마 말대로 그냥 포기하고 지금 당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집으로 갈까? 그러면 양말이 머릿속에서 떠나갈 수 있을까? 지금도 언니가 날 보고 있잖아. 언니가 먼저 말 걸어준다면 좋을 텐데. 무슨 일 있니? 한마디만 해주면 양말을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먼저 다가가서 물어봤다가 양말이 없으면 어떡해? 그러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 만약에 양말이 있어도 나처럼 다 큰 애가 와서 양말을 달라고 하는 걸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속으로 웃을 수도 있잖아.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단 말이야. 아니면 애당초 없다고 했는데 왜 와서 떼를 쓰는 건가 할 수도 있어. 이렇게 받는 게 정답인 게 맞나? 이건 너무 야비한 방법인 것 아니야?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나는 아직 못 정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아. 이러다가 엄마 아빠가 더 못 기다리겠다고 그만 가자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언니가 지금 이 순간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떡하지? 아니 애당초 양말 하나가 이렇게 고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야? 이렇게나 가지고 싶은 거라면 물어보지도 않고 집에 가면 분명히 후회할 거 같단 말이야. 정말 누군가가 도와주면 좋겠어. 엄마나 아빠나 아니면 언니라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너무 더워. 땀이 나는 것 같아.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엄마 아빠가 화가 나진 않았을까? 언니도 왜 저러나 하고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냥 가서 물어볼까?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어차피 양말이 없다면 나는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잖아. 아, 정말 너무 무서워. 너무 힘들고 두려워.



에스컬레이터 앞 의자에 앉아 체감상 30여분 간을 고민했던 것 같다.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소용돌이쳐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내가 포기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이 양말은 왜인지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온몸이 땀에 젖어 들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탈진하기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벌떡!



그렇게 수없이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와 아빠가 내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계셨지만 재촉이나 다그침의 기운은 전혀 없으셨다. 나는 물어보고 올게.라는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언니에게 향했고, 언니는 환영의 미소로 나는 반기며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 저기.. 혹시나 하고 여쭤보는 건데요.."


"네, 얘기해 주세요."


"산타 양말을 받고 싶은데 아까 저쪽에서는 남은 게 없다고 하셔서요.. 혹시 남은 거 하나 없으신가 여쭤보려고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언니는 고개를 숙여 간이 고객센터 아래를 뒤적였고, 고개를 든 언니의 손에는 비닐에 포장된 산타 양말이 들려있었다. 언니는 고생했다는 표정으로 내게 양말을 건네며 말했다.



"찾아보니 다행히 하나 남아있었네요. 여기 있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꽁꽁 긴장해 있었던 몸이 와르르 무너져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땀에 흥건하게 젖은 채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것만 같은 무거운 손을 들어 언니가 건네준 양말을 손에 받았고, 나는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하며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엄마! 나 받았어!"라고 외치며.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질문 하나 한다고 언니가 아이를 상대로 화낼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었고, 양말 재고가 아예 없는 경우는 드물었으니 보통 뒤져보면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던 초등학교 3학년이 지금 와서 보면 그저 어린 아기였으니, 언니의 눈에도 그저 귀여운 아이가 두려움에 덜덜 떨며 양말을 찾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게만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운 나쁘게 진짜 재고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니가 내게 면박을 주거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말해주었을 리도 없다. 그저 안타깝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을 터였다. 즉, 내가 그맘때 두려움에 떨고 걱정했던 그 모든 고민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게 그때는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동안 몇 번이고 온 세상이 무너졌다가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의 온몸이 젖었던 무거운 느낌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때 어린 마음에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냥 한번 좀 도와주지. 딸이 이렇게나 힘들어하고 있는데 어떻게 도와주지를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날의 그 질문이 내게는 큰 산이었으며, 그 산은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넘어가야 할 산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기다림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의 엄마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내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이다.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더욱 알 것 같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때가 있다면, 반대로 내가 도와주지 않고 한 발자국 뒤에서 아이들이 산을 넘어갈 수 있게 말없이 기다려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때를 구분하지 못하면 올바른 교육과 경험을 시켜줄 수 없으며, 그저 응석받이 아이로 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그런 때가 다가왔을 때 나와 아이를 분리하고, 담담하고 잔잔하게 응원하며 기다리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 또한 그렇게 응원을 받아봤기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내 아이가 고민을 거듭하며 도전을 하게 되는 순간에도 잠시 떨어져 응원하려 한다. 또한, 그 도전이 항상 성공으로 끝나지 않더라도 다그치지 않고 껴안아줘야겠다. 항상 든든하게 응원을 받고 있다는 그 충만함으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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