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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Apr 28. 2024

엄마의 신발은 슬리퍼였다

고요한 차 안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엄마 전화번호 아니?"


"네, 엄마 전화번호는.."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빨갛고 주황색의 뜨거운 열선이 눈앞을 가득 채워 온몸을 녹여주고, 그 앞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내 모습. 난로에 아이스크림? 그럼 대체 이건 계절이 언제라는 소리야?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기억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질문에 나는 눈을 떴다.



"엄마. 그때가 대체 여름이었어? 겨울이었어?"



내 물음에 엄마께서는 기억을 더듬으시지도 않고 바로 대답하셨다. 마치 바로 어제일이라도 되는 듯이.



"겨울이었어."


"그런데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그건 네가 아이스크림을 먹던 건 너무 놀라서 아주머니께서 주신 거였어."


"그럼 돈 드렸어?"


"아니. 괜찮다면서 끝내 안 받으시더라. 그래서 그 이후에 자주 갔었지, 너랑 같이."



엄마는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하신지 눈을 깜박이셨다. 그 눈과 함께 나도 따라 과거를 더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본래 있던 집의 재개발 때문에 잠시 들어가 살게 되었던 그 집은 내게는 정말 좋지 않았던 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집에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들끓었고, 옆집에는 도둑이 들었으며, 엄마와 할머니가 크게 싸우신 적도 있었다. 그 때 나는 오빠와 방 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물론 나중에 커서 들어보니 그때의 일은 우리와 관련된 일이었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언니가 살았는데, 그 언니가 강제로 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고 했던 기억도 있었고, 오빠와 걸어가다가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적도 있었다. 그 작은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오빠, 나까지 6명의 식구가 다닥다닥 살아야 했어서 부모님은 도 없이 거실에서 주무셨고, 할머니는 편찮으신 할아버지 수발을 들으시며 나날이 지쳐가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 곳에 처음 이사를 간 그날 저녁 부모님께서는 오빠와 나를 앉혀놓고 지도를 그려주시며 집의 위치를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알게 된 방향은 꽤나 집으로 오기 위해 돌아와야 하는 먼 길이었는데, 첫날에는 쭉 걸어오다가 도저히 집을 찾을 수 없어 카센터에 들어가 정비공 아저씨게 무작정 집을 물어 찾아왔었다. 그걸 보고 답답했던 오빠는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는데 문제는 오빠도 아직 어린 4학년이었다는 점이었다.



"학교 정문에서 내려와서 쭈욱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우리 집이 나올 거야."



그때 당시 그 설명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약도를 보면서 표현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음날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오던 길에 나는 깨닫게 되었다. 오빠의 설명에서 빠진 부분이 있었으며, 그것도 가장 중요한 '언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빠졌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오빠 말대로 한없이 쭉 걷고 또 걸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길을 잃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텅 빈 거리에 어린 나 홀로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뭐 하니?"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언니가 서 있었다. 언니는 자신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멍하게 서 있으니 도움을 주려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집에 가는 데 길을 잃었다고 했고, 언니는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던 슈퍼마켓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거기서 한 블록 거리에 경찰서가 있었다. 아마도 언니도 지리를 잘 몰랐기에 가장 잘 아는 곳으로 데리고 간 것 같았다.) 언니는 슈퍼마켓 아주머니께 도움을 요청했고, 그렇게 먼저 자리를 떠나갔다.



그때의 내 기억은 잘 없지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나는 아주머니의 안내대로 난로 앞에 앉아 몸을 녹였고, 아주머니께서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물으셔서 내가 외워두었던 엄마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답했다.



그렇게 내 눈앞에는 새빨갛고 따뜻한 난로가 온몸을 녹여주었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내 손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는데, 그것을 열심히 먹으면서 그렇게 온몸을 녹이고 긴장도 녹였다. 온몸이 나른해져 눈이 감길 쯔음이 되었을 때 갑자기 들려온 소리는 기다렸던 엄마의 목소리였다.



"소흔아!"




그때 당시 엄마는 '저녁이 되어야 볼 수 있는 엄마' 였기에 벌건 대낮에 나타난 엄마가 믿기지를 않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내 상태를 살피며 연신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하셨고, 그렇게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나와 엄마 차에 탔다.



익숙한 차에 타서 익숙한 노래를 들으며 엄마를 바라보던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뭔가 꿈을 꾸는 듯 몽롱하고 나른했다. 그렇게 '대낮의 엄마'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천천히 옮겼는데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엄마의 신발이었다.



'슬리퍼?'



다급함이 한껏 느껴지는 슬리퍼. 엄마는 실내화였던 슬리퍼 차림으로 나와 내게 달려와주신 것이었다. 나중에 여쭤보니 그때는 점심시간이었고, 엄마는 전화를 받고 바로 뛰쳐나와 내게 오셨던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썼던 강원도 속초 여행 이후로 엄마와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하나였다.



'엄마가 나를 걱정해 주셨구나.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구나.' 하는 생각.




그 두근거리고 땀이 나고 나른하고 몽롱하던 차 안의 공기와 엄마의 슬리퍼. 눈을 감으면 내 눈앞에 가득한 난로와 함께 그 공기의 냄새가 코 끝을 스치고, 엄마의 슬리퍼가 밟는 대로 움직이던 자동차의 속도가 느껴진다.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던 내게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은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고, 걱정이었다. 나른한 든든함. 풀어지는 안정감. 그것만으로도 온 세상에 두려움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이 내게 오래도록 남았다. 날씨조차 헷갈릴 정도로 긴장되었던 순간에 슈퍼맨처럼 날아온 엄마와 그런 엄마가 얼마나 다급하고 당황한 채 달려와주신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슬리퍼. 그것이 진짜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자식을 위한 사랑이 아닐까?



그날 이후로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또한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도 사라졌다. 언제나 내 뒤에서 든든히 나를 받쳐주고, 언제나 길을 잃으면 달려와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내가 두려워할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런 부모가 되어야겠다. 언제나 내 곁에, 내 뒤에 항상 든든히 있어줄 것이라고 완벽히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그렇게 된다면 그 든든함을 버팀목 삼아 자라난 나의 아이도, 세상의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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