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에 잔뜩 잠을 담고서도 묵묵히 잠을 밀어내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내던 나. 학교를 다녀보니 알 것 같다. 그때의 엄마가 얼마나 내게 온전히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신 것인지를.
지금은 상피제도가 강력했지만 내가 학생 때만 해도 상피제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우리 학교를 1 지망이 아닌 2 지망에 썼었는데, 그 1 지망을 떨어졌고, 결국 2 지망으로 우리 학교에 배정받은 13명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 엄마와 학교를 함께 다니며 꽤나 독특한 추억들을 쌓았다. 엄마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없이 다닐 수 있었다. 게다가 매일 일어난 일을 집에 가서 얘기하던 내 성격 상 엄마가 내 주변 친구들을 다 알고 계실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굉장히 편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기회로 알게 된 후배가 생겼다. 이 후배는 정말 똑똑하고 당찬 후배였는데, 그런 후배의 모습이 기특해서 이것저것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며 즐거움을 느꼈다. 후배는 내가 알려준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그 자리에서 응용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때 느낀 즐거움을 품에 담으며, 얼른 집에 와서 엄마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을 계속했다.
"엄마, 그 애가 진짜 내 말을 다 알아들었어. 기분이 진짜 좋았는데 이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엄마는 알겠어?"
그때 당시 나는 나의 감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다 정확한 감정을 보다 정확한 단어로 정리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감정이 풍부한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엄마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는 그날도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천천히 입을 열어 나의 답답한 마음을 해결해 주셨다.
"기특했을 거야. 네가 알려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후배를 보고 있었으니까. 선생님들도 학생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거든."
"맞아! 기특했어! 정말로 너무 예쁘더라고."
착착 설명이 되는 만큼 더욱 확실해지고 선명해지는 감정에 벅차올라 나는 그 순간순간을 곱씹으며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고 또다시 하며 몇 번이고 감정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시던 엄마의 눈에는 결국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 자?"
"아니, 안 자."
거짓말이 아니었다. 졸음은 쏟아지고 있었지만 절대로 잠들지 않은 상태로, 엄마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 몇 번이고 졸려? 하는 내 질문에도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으시면서. 마침내 말을 충분히 반복한 것 같이 느껴진 나는 충만해진 마음을 흐뭇해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제 잘까?"
"이제 하고 싶은 얘기 다 했어?"
"응. 이제 나도 졸려."
"그래. 그럼 이제 자자."
대체 몇 시인 거지? 그제야 힘겹게 하품을 하는 엄마를 보다가 시선을 돌려 시계를 보았다가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계는 벌써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 시절 열두 시를 넘기지 않고 반드시 잠을 잤던 내게 새벽 2시는 거의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다음 날은 등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대체 얼만큼 동안 이야기를 떠들어댄 것인가 싶을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던 것이었다.
"엄마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잘 자."
"소흔이도 잘 자."
힘겹게 연이어 터져 나오는 하품과 함께 엄마는 내 방의 불을 꺼주셨고,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학교에 다니게 된 내가 지금 떠올려보면 새벽 2시까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수없이 반복된 같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졸음을 참으며 새벽 2시까지 들어준다라니. 그것은 거의 필사적인 집중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 힘든 일을 엄마는 해내셨다. 오로지 딸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 그날 그 순간의 엄마는 한 번도 지겨워하시지 않았고, 한 번도 졸린 것을 티 내지 않으시며, 이제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내지도 않으셨다. 그저 앉아서 끝까지 내 이야기에 집중하시면서 내가 행복감에 충만해질 수 있도록. 그렇게 옆에 계셔주셨다.
그렇게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모성애가 아니었을까? 분명히 매체나 미디어에 표현되는 것처럼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야지만 모성애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 속에서 정말로 버티기 힘든 순간에도 자신의 아이의 웃음과 행복을 위해 버티는 것. 그것이 바로 모성애이자 부모가 아닐까? 나는 이 날의 졸음이 쏟아지는 엄마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사랑의 방향이 일정하고, 사랑의 크기가 온전해서 나는 그날 이후에도 두려움과 걱정 없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향이 일정하고, 크기가 온전하여 절대 아이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안정감 있게 든든히 뒤에서 받쳐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크고 단단한 사랑이자, 아이가 클 수 있는 가장 좋은 거름이지 않을까. 그 거름을 받침 삼아 자신의 우주에게 거절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기억을 담고 자라난 아이는 더 이상 세상에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 없이 당차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느 순간 많이 지치고 힘든 시간이 있을 것이고, 그 순간에 나의 아이가 내 손을 붙잡고 더욱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그 옛날의 힘겹게 하품을 참아내던 엄마의 눈동자를 떠올려야겠다. 그 눈꺼풀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눈동자에 비친 행복에 가득 찬 나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야겠다. 그렇게 내 눈에 비치고 있을 나의 아이의 행복을 위해. 견디고 또 견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