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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Oct 14. 2022

불안정 애착, 그 이후...

<애착 형성과 애착 유형>

     많은 것이 혼란스럽다.

지난 시간 사랑을 찾고 그것을 유지했던 방법이 왜곡된 사랑의 애착에 기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엄청난 혼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사랑의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사랑의 형태도 다양하기에 애초부터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획일화된 모습이 존재하지도 않고 정답이란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사랑의 속성이 이렇기에 내가 여태껏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게 됐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쉬는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잠결에 묻힌 그녀의 목소리가 잔잔한 바람을 타고 귓전을 간지럽히면, 슬며시 찾아오던 심리적 따뜻함이 사랑의 애정 표현이 아닌 주체할 수 없는 또 다른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랑을 거두지 않고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것과 나의 흔적을 지워 상대를 한가득 채워 넣는 것이라던 확신에 이젠 자신이 없다. 이렇게 사랑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온통 불안정 애착에 침잠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어떤 것이 맞고 틀린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랑의 방식을 옳고 그르다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했다. 누구도 답을 줄 수 없기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무더위가 찾아오던 여름의 초입, 길을 걷다 그늘에 누워 있는 고양이를 봤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털에 윤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길고양이는 아닌 듯싶었다. 친해지고 싶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승처럼 쪼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 손을 내밀었다. 점점 다가오는 손을 의식한 듯 날 한번 힐끗 쳐다봤다. 그 눈길에 멈칫하다 다시 뻗은 손이 폭신하고 보드라운 털에 닿았을 때, 피부를 통해 느껴지던 감촉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 같았다. 이때 느꼈던 어색한 그 감정은 오랜 시간 누구와도 교감하지 못한 채 홀로 살아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나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내민 콩알만 한 앞발이 너무 귀여워 한없이 만졌다. 끝나지 않는 관심이 귀찮았던지 불평 한마디 내지르고 옆으로 도망가는 녀석을 웃으며 쳐다보다 다시 내 갈 길을 갔다. 잔잔한 손의 감각을 놓치지 않은 채 길을 걷는데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왜 이성보다 동물과 함께 있을 때 더 강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가?’


     어쩌면 찾아 헤맸을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혼자인 이유,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고 친밀한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 말이다. 나는 동물에게서 버림받거나 상처받은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내가 가진 조건과 경제적 상황이 어떻든 그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한번 준 마음을 닫는 법이 없었다. 사람처럼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론 언어라는 형식적인 도구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행동과 눈빛, 표정 등은 알아차릴 수 없는 거짓과 가식으로 포장된 사람의 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행동에서 보이는 진실한 감정은 말로 충족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줄 수 있기에 버림받는 아픔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동물들이 그랬다.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 버림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나에 대한 애정은 기나긴 시간 동안 사랑에 굶주리고 아픈 기억만 간직한 채 성인이 된, 내 안의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편하고 행복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왜 매번 사랑의 상처가 클 수밖에 없는지, 일상의 일은 어렵지 않게 잘하면서도 유독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틀어질 수밖에 없는지, 동물에게서만 느낄 수 있던 막대한 심리적 편안함이 무엇인지, 이 모든 것들의 해답이 불안정 애착에 있었다.


     불안정 애착은 자신이 모르는 마음의 공간을 가장 증오한다. 그것이 사랑의 감정인지, 이별의 감정인지 알 수가 없기에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고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독립성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크나큰 두려움은 만성적인 사랑의 배고픔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를 깨닫지 못하는 불안정 애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웠던 관계를 완전히 망쳐버리게 된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이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다. 오직 그 시간만이 나에 대한 사랑의 불안감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거였다.

이것 때문에 참으로 오랜 시간을 힘들어했고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불안정 애착을 알기 전까지 서로 관계가 없는 듯 점점이 흩어져 있던 여러가지 상념이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되는 순간, 선명한 울림이 마음을 때렸다. 선명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마음속이 맑고 깨끗해졌다. 그렇다고 당장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랜 고통 속에서 벗어난 듯 잠시나마 홀가분했다. 이유가 어찌 됐건 나는 불안정 애착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런 나를 탓하며 놓쳐버린 많은 인연에 괴로워하기보다 내 마음을 깊게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주 양육자의 보호 없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던 어린 시절, 또 혼자될까 두려워했던 내면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는 일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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